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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문화적인 세상읽기] 이집트와 우크라이나

고동우 기자 kdwoo@idomin.com 2014년 04월 09일 수요일

이집트와 우크라이나. 근래 가장 큰 격변을 겪고 있는 지구상의 두 나라다. 소위 시민혁명-유혈사태에 이은 예기치 못한 제3세력(군부와 러시아)의 등장이라는 패턴도 유사하다. 한국 입장에서 교훈을 찾는 목소리가 분주하다. 주로 외교·안보상의 지혜에 관한 것이다. 단지 그뿐일까. 두 나라 사태는 오히려 정치의 존재 이유에 대한 엄중한 사유를 촉구하고 있다. 근원을 돌아보자. 둘 모두 정권의 반민주적 행태가 저항의 도화선이 되긴 했으나, 그 이면엔 주요 정치세력과 시민들의 극한 대립과 분열이 깔려 있었다. 이슬람 대 자유·세속주의 세력, 우크라이나계 대 러시아계의 뿌리 깊은 갈등이 그것이다.

이집트 무르시 정권은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헌법 개정을 밀어붙임으로써, 우크라이나 야누코비치 정권은 유럽연합(EU)과 협정 체결을 잠정 중단함으로써 야권 세력의 반발을 자초했다. 나라는 반으로 쪼개졌고 무력과 무력이 맞부딪쳤다. 사망자까지 속출했다. 결국 문제의 대통령들이 권좌에서 쫓겨나면서 민주시민혁명(?)은 감격적인 승리를 맛보는 듯했다. 그러나 진짜 시작은 그 다음부터였다. 세속주의 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은 이집트 군부는 혼란을 틈타 권력을 접수한 뒤 이번엔 친무르시·이슬람 세력을 무차별 학살했다. 푸틴 러시아 정권 역시 격랑의 와중에 친야누코비치·러시아계 세력의 응원을 받으며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인 크림반도를 사실상 복속했다. 말 그대로 늑대를 몰아내려다 호랑이를 불러들인 꼴이었다.

사회 갈등의 조정과 해결이라는 정치의 본령은 보이지 않았다. 여야 지배 정치세력들은 포용하고 설득하기보다 외려 그 갈등을 증폭시키며 어떻게든 상대편을 무력화하는 데 주력했다. 강경일변도의 집권세력은 물론, 최악의 결과를 예견 못한 채 정권 제거에만 힘을 쏟은 야권 세력 모두 사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둘 다 똑같이 무능하고 또 편협했다.

   
  지난 3월 18일 크림반도 주민들이 러시아 깃발을 흔들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연설 실황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선을 국내로 옮겨와 보자. 지금은 다소 누그러졌으나 지난해 우리는 여야 정치세력과 그 지지자들의 한 치의 타협 없는 전쟁터 속에 살았다. 2012년 대선을 비롯해 그전 정권에서 반목 양상까지 포함하면 이 나라의 이념적·정서적 분열 역시 앞서 두 나라 못지않다고 해야 할 듯하다. 당연히 싸울 땐 싸워야 한다. 하지만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접근은, 보다 더 시급하고 절실할 수도 있는 다른 수많은 사안들을 반드시 소외시키기 마련이다. 여야가 격하게 대립한 국정원 대선 개입이니 NLL 회의록, 기초선거 공천 폐지 같은 것들, 물론 중요한 이슈들이나 문제는 목표와 효과, 그리고 힘의 분배였다. 상대 세력에 대한 정치적 타격 외에는 희미했다. 죽기 살기로 진행되는 이 싸움이 국민의 삶에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지, 무엇을 바꿔낼 수 있는지, 과연 '올인'해야만 하는 것인지 누구도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이집트와 우크라이나의 현 상황이 그렇다. 양 진영의 핏빛 충돌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그 많은 피는 대체 누구를 위해 뿌려졌던 것일까? 두 나라 사태의 근원에는 국민들의 경제적 불만 또한 크게 작용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어느 누가 언제 어떻게 또 몰락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밥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는 그 어떤 찬란한 구호와 명분으로 포장해도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끔찍한 상상이지만 이집트나 우크라이나 같은 비극이 우리에게도 재현되지 말란 법 없다. 정치세력은 물론 국민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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