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공공의 장소-우리가 함께하는 그곳'

지난달 말 서울 중구 을지로 옛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들어섰습니다. 이에 대해 "막대한 건설비(4840억 원)와 규모(지하 3층·지상 4층)에 비해 공간 활용도가 떨어진다", "우주선 모양의 외관이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 "공공건축이 아닌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사적 욕망이 실현됐다"는 둥 말이 참 많은데요. 이 외에도 서울시청 새청사, 고층 빌딩의 밀림에 갇힌 해운대 등을 보면 무조건 더 크게, 더 높게, 더 튀게 건물을 짓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걸 느낍니다.

그렇다면 소수만을 위한 닫힌 건축이 아닌 모두가 함께하는 열린 건축은 없을까요?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은 지난달 29일부터 건축이 사적 영역을 박차고 공적 영역으로 나온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는 8월 17일까지입니다.

전시 제목은 '공공의 장소-우리가 함께하는 그곳'인데요. 총 8팀 17명의 건축가, 디자이너, 사진가, 사회적 기업 활동가가 참여했습니다.

기존 건축물에 새 숨결을 불어넣다

재생 건축이라고 들어봤나요? 도시 재생과 비슷한 의미인데요. 기존 건축물을 무조건 허물기보다는 거기에 디자인이나 활용도를 더해서 새로운 건축을 만들어내는 것을 뜻합니다. 생활 속에 버려지거나 쓸모없어진 것을 재사용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의 한 형태라 볼 수 있죠.

미술관 1층은 재생 건축을 이용한 작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건축가 이소진(아뜰리에 리옹 서울 대표)의 '윤동주문학관'과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의 '농촌경관을 생각하다', 건축사진가 신경섭의 작품입니다.

'윤동주문학관'은 용도 폐기된 수도가압장이었다. 건축가 이소진은 시설을 철거하지 않고 시인을 닮은 문학관으로 재탄생시켰다./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독립운동가이자 청년 시인 윤동주의 문학관(서울 종로구 청운동) 일부가 미술관에 재현됐습니다. 이 건물은 2012년 문학관으로 재탄생하기 이전에 30년 동안 다른 시설로 사용됐는데요, 바로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입니다.

건축가 이소진은 설계를 다 마친 시점에 물탱크의 존재를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는 물탱크를 없애기보다는 원형 그대로 활용해 전시실로 만들었습니다.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에 가면 모형과 영상으로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는 오랫동안 쓰지 않고 버려져 있던 창고를 업사이클링해 우포자연도서관을 짓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대의 습지인 우포늪에 있는 간이집하장이 도서관과 게스트하우스로 변신한다니 놀랍지 않나요? 건축가뿐만 아니라 환경운동가, 도서관 전문가, 시민사회와 함께 진행 중이라서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도시 속 공공 건축물을 찾아서

미술관 2층으로 올라가면 초입에 녹색 벽면에 자그마한 황토색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습니다. 가까이 서보니 단단한 나무가 아닌 두꺼운 골판지로 만들어졌네요.

알고 보니 건축가 신혜원이 작업한 '한강나들목개선사업', '광주 사진공원 공공예술프로젝트',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의 일부분이 두꺼운 골판지 같은 카드보드로 만들어졌습니다. 눈에 띄는 건 해당 지역의 환경과 여건에 맞게 지하보도, 공원, 벤치들이 잘 디자인됐다는 건데요, 관람객이 직접 앉거나 누울 수도 있습니다.

산복도로(山腹道路)는 산 중턱의 구불구불한 길을 말합니다. 산복도로에 건물을 짓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요.

건축가 조서영은 부산지역 산복도로에 있는 보수동 주민센터, 범천동 버스정류장, 글마루 작은 도서관, 역사의 디오라마, 푸른솔 경로당 등 6개를 작업했습니다. 산복도로의 지형적 특성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되살린 건축물입니다.

조서영 건축가는 부산 산복도로에서 수행한 작업을 소개한다. 지형적 특성을 고려한 건축물은 자연스럽게 그 지역에 스며든다./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혼자보다 둘이 하는 것이 재밌다

건축을 공공의 장소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작품도 모여 있습니다.

바우아키텍츠(권형표, 김순주)는 공공의 장소를 다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여깁니다. 학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딱딱한 복도의 창문도 그들 손을 거치면 놀이 공간으로 변신합니다.

바우아키텍츠는 공공의 장소를 누군가에게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고, 걷고, 놀기 위한 재미있는 공간으로 여긴다./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제이와이아키텍츠(조장희, 원유민, 안현희)는 '저예산주택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세 사람은 재능기부와 후원금으로 저비용주택을 설계했는데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전남 화순, 벌교, 장흥에 집을 지었습니다.

인터뷰 영상을 보면 일명 '뽁뽁이'로 불리는 에어캡이 건축 단열재로 변신하는데 신기합니다. 북향 지붕에 뽁뽁이 25장을 겹쳐 단열재로 만들어 넣고, 폴리카보네이트로 마감을 했습니다. 그들의 훈훈한 프로젝트를 보니 건축가가 단순히 건물을 지어 돈만 버는 직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시실 끝 무렵에 마주한 사회적기업 문화로놀이짱의 '생각하는 손들의 공공지대'라는 작업도 흥미롭습니다. 문화로놀이짱은 우리 주위에 버려지는 것(목재 등)들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버려진 사물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것을 지속가능하게 만듭니다.

제이와이아키텍츠는 저예산주택시리즈를 통해 어려운 이웃을 위해 힘을 모아 지은 건축도 공공건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시실 바닥을 보면 ㄱ에서부터 ㅎ까지 적혀 있는데 자음마다 실험실과 도서관을 보는 듯한 상상에 빠집니다. 'ㄴ: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의 수리병원'은 가구, 자전거, 신발, 시계 등을 수리하여 사용하는 공간입니다.

'ㄹ: 재료들의 도서관'은 문화로놀이짱이 수거와 해체를 통해 다시 자재화한 재활용 목재들이 정리돼 있습니다. 그들의 재치와 기발함이 관람객의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전시를 보고 나니, 공공건물 건축에 앞장섰던 정기용(1945∼2011)이 떠오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건축가란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인식하고, 이를 기반으로 동시대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진정 사회가 요청하는 것인지 스스로 검증해 보고, 광범위한 지식과 습득한 기술을 수단으로 창의력을 발휘해 사람들의 삶을 반영·조직하여 궁극적으로는 삶의 질을 높이고, 나아가 한 사회의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는 전문적 직업인이자 실천하는 지식인이다."

도시 속 더 크게, 더 높게, 더 튀게 지어진 건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요즘. 건물의 공공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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