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의회 바로 알기] (2) 기초의회, 어떻게 활용하나

의결권·행정감시권·자율권·선거권·제시권 등 기초의회가 지닌 권한은 많다. 그 권한을 적절히 사용하는 방법 역시 다양하다. 하지만 유권자가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아니, 애초 관심이 없다. 그러나 유권자가 등한시하는 기초의원 권한에는 활용 가치가 높은 권한이 곳곳에 숨어있다. 유권자가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도 바로 그 지점이다.

◇청원 = 지난해 창원시에서는 연말이면 반복되던 관내 '보도블록 교체'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지난해 8월까지 최근 2년 6개월간 보도블록 교체 비용으로 35억 3435만 원(총 51건)이 사용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관행처럼 굳어진 연말 보도블록 교체에 기초의회가 제동을 걸었다. 창원시의회는 지난해 8월 '보도의 설치 및 관리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는 시가 보도 설치·정비 계획을 5년마다 수립해 차례로 진행하도록 하고, 겨울철 보도공사(매년 12월∼다음해 2월)를 금지하도록 했다. 또 공사 시작·종점에 공사명·공사기간·공사구간 등을 밝히도록 하여 시민이 늘 감시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었다. 조례는 같은 해 9월 공포돼 곧바로 효과를 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이 같은 결과가 '청원'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청원은 국민이 국가기관에 대해 일정한 사항을 문서로 진정하는 것을 말한다. 기초의회 역시 청원과 관련해 '청원수리권(주민이 의원 1인 이상의 소개를 받아 제출하는 청원을 수리하고 처리하는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잦은 보도블록 교체로 예산 낭비를 우려한 일부 유권자는 기초의회에 관련 문제를 제기, 기초의회가 앞장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물론 그 요구가 정식 청원은 아니었으나, 청원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내기에는 충분했다. 기초의회는 조례를 통해 해결 방안을 제시했고 집행부는 이를 따랐다. 청원과 청원수리권이 미치는 영향력을 바탕으로 민원을 건의할 수 있는 통로가 확인된 셈이다.

기초의회에 제기하는 청원의 활용 가치가 유독 높은 이유도 있다. 대부분 민원은 집행부가 추진·관여하는 일과 맞닿아 있고, 집행부를 감시하는 일이야말로 기초의회의 기본 역할이다. 결국, 합당한 문제 제기를 받은 기초의회로선 이렇든 저렇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만큼 해결 방안이 나올 가능성도 크다. 물론 유권자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기초의회 활용방안은 청원에 그치지 않는다.

◇포괄사업비 = 흔히 '주민숙원사업'이라 부르는 사업이 있다. 사업 규모, 반영 예산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대개 '공영주차장 조성', '주민운동장 건립', '마을 진입로 확장'과 같이 동네에서 이뤄지는 소소한 사업이다.

대규모 개발보다 우리 동네 체육시설 건립이 더 와 닿는 주민은 숙원사업 해결이 마냥 반가울 수밖에 없다. 비록 그것이 동네 헌옷 수거함을 하나 더 늘리고, 도서관에 책 한 권을 더 넣는 일일지라도 당장 주민생활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도 변함없다.

그런데 기초의회는 이 주민숙원사업 해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특히 단위가 작은 사업일수록 영향력은 더 커진다. '포괄사업비'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기초의원은 연간 적게는 50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가량의 예산을 재량으로 편성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포괄사업비라 불리는 이 예산은 기초의원 요청이 있으면 각 지자체가 예산에 반영한다. 물론 포괄사업비를 모든 사업에 마구잡이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애초 충분한 심의 과정을 거친 뒤 편성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기초의원은 "포괄사업비야말로 가장 우선하여 편성하는 예산이자 확실한 예산이다"고 입을 모은다. 일정 부분 자유권이 보장되는 동시에 활용 가치가 높은 예산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예산에 '포괄사업비'란 항목은 따로 없다. 포괄사업비는 각종 관련 사업 예산에 숨어 있으며 의원별 정리된 내용도 없다. 이는 곧 포괄사업비 허용 범위가 넓고 지역 유권자라면 누구나가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권한임을 나타낸다. 합리적인 문제 제기만 있다면 충분히 그 가치를 뽐낼 수 있다.

창원시의회 한 다선 의원은 "주민 생활과 밀접한 예산, 실생활에 바로 쓰이는 예산이 바로 포괄사업비다"며 "포괄사업비를 제대로 쓰는 일이 곧 기초의회를 잘 활용하는 방법이다"고 말했다.

기초의회는 유권자 요구를 기반으로 운용된다. 기초의회를 제대로 알지 못해 활용하지 않았다는 변명은 이제 그만할 때다. 청원과 포괄사업비만으로도 유권자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며 기초의회를 활용할 수 있다.

물론 남은 과제도 있다. 이제는 유권자 말을 잘 들어주고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할 '일꾼'을 뽑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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