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주문예약제 음식점 연 주시정 씨

그저 '백화' 두 글자만 적힌 스티커가 출입구 위 유리창에 붙어있는 창원의 한 작은 가게. 겉모습만 봐선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어 종종 지나가던 이가 "여기 뭐하는 곳이에요?"라며 묻고 가기도 한다는 곳.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4평가량 되는 자그마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7개 의자가 줄지어 놓인 바(Bar) 형태 좌석. 그 너머로 갖은 식재료며 프라이팬, 가스레인지 같이 요리에 필요한 기구들이 보인다. 작은 체구의 주시정(32·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 씨는 그 공간을 분주히 움직이며 마치 마술을 부리는 듯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어낸다.

"가게를 인수하고 간판에 붙어있던 스티커를 떼는데 햇빛을 오래 받아서인지 정말 안 떼지더라고요. 이전 상호가 쌀백화점이었거든요. 열심히 쌀을 떼고 났더니 아래에 젓갈 자가 떡하니 나온 거예요. 알고 봤더니 그 이전에 상호가 젓갈백화점이었대요. 그렇게 또 계속 스티커들을 떼는데 유독 이 백화 두 글자가 안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내버려뒀죠. 그러다 시청에 가게 신고를 하러 갔는데 상호가 있냐는 거예요. 특별히 지은 이름도 없고, 마침 간판에 붙은 백화 두 글자가 생각나서 그냥 가게 이름으로 쓰게 됐어요."

시정 씨는 대학 시절 농업을 전공했다. 하지만 무농약·유기농업, 공정거래 등 그녀가 관심있던 분야는 대학에서 좀처럼 배우기가 힘들었다. 점점 학교 다니는 것에 흥미가 떨어지던 중 얼굴만 알던 친구가 툭 던진 말이 시정 씨를 흔들었다.

"니 내랑 인도 갈래?"

고민해보겠다고 말한 시정 씨는 그날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그녀는 이미 인도행을 결심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인도, 일본, 프랑스 등으로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엔 학교를 나가거나, 바텐더로 일하거나, 플로리스트로 일하거나 했다.

"원래는 요리를 잘 못했어요. 그런데 외국에서 친구들과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돌아가며 그날 먹을 음식들을 만들어야 했죠. 조금씩 만들며 조금씩 관심도 생겼다고 할 수 있어요."

한국에 돌아온 시정 씨는 집 근처에 작은 가게를 얻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 〈주문이 많은 요리점〉에서 영감을 얻어 주문·예약제 음식점을 운영하기로 했다. 그렇게 메뉴판 하나 없는 가게가 탄생했다.

   

올해 1월부터 이제 석 달, 시정 씨는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꼭 놀러가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정 씨는 좌석이 많지 않지만 손님을 가급적 겹쳐 받지 않는다. 많은 인원도 받지 않는다.

"제 음식이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요. 재료는 그날그날, 만드는 방법은 그때그때 다른 요리들이니까요. 이렇게 굴러가는 가게다보니 사실 가장 중요한 게 손님과의 호흡이에요. 예를 들면 채소의 식감이 싫다는 손님이 예약을 한 거예요. 그때부터 저는 과제를 푸는 거죠. 채소의 식감이 싫은 것이지 채소를 안 먹는 건 아니잖아요. 최대한 그 식감을 느낄 수 없는 요리를 준비해요. 손님이 오시면 준비한 음식을 내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 돌아서서 다른 요리를 하는 척 하지만 저는 궁금해요. 맛있다는 표현은 솔직하게 나오거든요. 그 한마디를 기다리죠. 그렇게 맛있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이렇게 손님에게 집중할 수 있어야 저 스스로도 만족할 수 있어요. 보시기에 너무 태평해보일 수 있겠지만요."

얼굴에 미소를 띤 시정 씨가 말한다.

"저는 행복을 찾아 헤맸던 것 같아요. 행복을 찾아 여러 곳을 다니기도 했죠. 그러다 프랑스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소박한 돌담에 감동받은 저를 보고 불현듯, 정말 불현듯 알게 됐어요. 지금 감동하고 있는 이 돌담이 어렸을 적에 시골 할머니댁에서 본 것과 다를 게 없다는 걸요. 그때 내가 행복을 밖에서만 찾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행복은 지금 있는 곳에도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돌아왔어요. 그리고 지금 저는 매일매일 행복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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