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기술에 파묻힌 문화왜곡 탈피

요즘 헷갈리는 말이 한 둘이 아니지만, 이번 시리즈와 관련해서는 ‘문화산업’과 ‘문화콘텐츠산업’이 어슷비슷하게 자주 사용돼 보통사람들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고 있다. 크게 봐서 문화는 곧 ‘콘텐츠(contents.내용물)’이고, 그것을 경제적인 교환가치로 가공해 산업화시킨다는 내용이니 두 단어가 다를 바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용어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먼저 ‘문화산업’이란 용어에 대해서는 이 시리즈 두 번째 순서인 ‘문화산업과 정치’에서 상세하게 다룬 바 있다. 요약하자면, 애초에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문화산업을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선전 또는 선동하고,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대중의 욕구를 조작하는 반계몽적인”개념으로 사용한 뒤 우리나라에서도 90년대 초반까지 줄곧 규제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업적인 대중문화를 가리키는 개념이었다. 그러던 것이 93년 영화 〈쥬라기 공원〉의 충격과 함께 문화의 경제적인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문화산업이 규제가 아닌 지원의 대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밀레니엄 담론이 확산되면서 ‘문화의 세기’에 대한 국가적인 공감대가 정착되기에 이른다. 현 정권에 들어서는 물론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라는 본격적인 지원시스템으로 구체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문화콘텐츠’란 용어는 언제부터 등장했을까. 이 용어가 언론에 최초로 등장하기는 1998년 6월 8일자 동아일보 13면이었고, 그 기사는 한 벤처기업이 클래식 음반 데이터베이스로 일본 콘텐츠 시장에 진출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콘텐츠란 ‘컴퓨터 가공 정보’, 즉 디지털화된 정보를 가리키는 것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문화콘텐츠산업이란 문화예술을 상품화 또는 산업화시키는 활동 중에서 ‘디지털 기술을 적용해 가공하는 경우’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이와 같은 비중 때문에 지난 한햇동안 정부 부처간에 영역 다툼이 적지 않았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듯이 디지털 기술이 먼저냐, 아니면 그 기술의 대상인 콘텐츠가 먼저냐를 놓고 정보통신부와 문화관광부가 한 판 힘겨루기를 벌였던 것이다.
선수를 친 것은 정보통신부였다. 정보통신부는 지난 해 4월 ‘디지털콘텐츠산업 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2005년까지 1만 개의 디지털 콘텐츠 사업자를 육성하는 등의 사업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이에 질세라 문화관광부는 같은 해 6월‘콘텐츠 코리아 비전21 - 문화콘텐츠산업 발전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2003년까지 문화콘텐츠 핵심생산국 진입기반 마련이라는 목표를 내세운다. 한 쪽에서는 디지털콘텐츠, 다른 한 쪽에서는 문화콘텐츠라고 불렀지만 사실상 같은 콘텐츠를 상대로 다른 계획을 세운 것이다.
물론 경계가 애매한 대상을 놓고 이해관계가 중첩되는 당사자들이 경쟁을 벌이는 것 자체는 과히 나쁘지 않다. 경쟁을 통해 보다 효율적인 정책수립과 집행이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대상이 황금알을 낳는다는 콘텐츠산업 아닌가. 다행히 지난 해 10월 문화콘텐츠산업의 주무부처가 문화관광부로 낙점되며 기본적인 교통정리는 끝난 상태다.
그러나 문제는 정보통신부와의 교통정리보다는 문화관광부의 기본업무인 문화정책의 이념적 충돌 가능성에 있다. 과거 우리나라 문화정책의 이념적 기둥이라면 크게 ‘문화정체성 확립’과 ‘문화복지 실현’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국가적인 힘을 쏟고 있는 문화콘텐츠산업 관련 정책은 이러한 이념보다는 아무래도 경제적.기술적 성과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 돈과 기술에 의한 문화의 왜곡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물론 이제 막 시작한 사업들을 놓고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성급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놓치지 말고 관찰해야 할 대목인 것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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