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맛 읽기] 좋은 쌀, 맛있는 밥알

창원에서 자주 가는 식당 밥값이 1000원이나 올랐다. 나오는 반찬 수준이나 재료는 변함이 없어 불만스러워 하던 차에 밥알을 씹는 순간 마음이 달라졌다.

추어탕에 밥을 말아 먹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윤기라고는 찾을 수 없는 쌀밥을 내놓았던 식당에서 차진 밥을 맛보는 순간 행복감마저 들었다. 식사 후 2시간 30분 정도 지나면 허한 기분이 느껴지던 것이 쌀이 바뀐 밥을 먹었더니 든든함이 배가 넘었다.

◇맛있는 반찬 맛없는 밥 = 정성스럽게 밥을 내놓는 집은 밥그릇만 봐도 안다. 물론 6000원 정도 하는 백반을 시켜 먹으며 쌀밥이 사기그릇에 담기길 기대하는 건 어렵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쌀 포장지의 등급표시. 세 제품 모두 등급·단백질 함량 '미검사' 제품이다. /박정연 기자

문제는 2만 원 정도씩이나 하는 제주 생갈치조림을 팔면서 스테인리스 그릇에 쌀밥을 담는 음식점이다. '스텐' 냄새가 가득한 그릇도 푸석푸석한 밥알도 잊을 수가 없다.

'좋은 쌀' 선택부터 '맛있는 밥'을 짓는 데 정성을 쏟는 식당은 대부분 담는 그릇에도 각별한 신경을 쓴다.

보통 대부분 식당은 식자재 업체에서 모든 음식재료를 공급받는다. 눈으로 재료를 꼼꼼히 확인하고 취사선택해 골라오는 법이 없다. 쌀도 마찬가지다.

쌀의 생산 연도부터 도정일 등을 확인하며 직접 쌀을 고르는 식당을 찾기란 어렵다. 압력솥이나 돌솥으로 밥을 짓는 집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한정식집 등에 가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수많은 반찬이 깔리지만 정작 밥은 제대로 신경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찬은 한 3가지만 나와도 좋으니 밥맛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면 안 될까. 밥의 질에 집중해 밥집을 찾으면 식당의 옥석이 새로 가려지기도 할 것이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쌀 포장지의 등급표시. 세 제품 모두 등급·단백질 함량 '미검사' 제품이다. /박정연 기자

◇알고 먹는 쌀이 맛있어 = 식품을 살 때 유통기한을 보듯이 쌀을 구입할 때도 생산 연도와 도정일을 챙긴다면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

올해를 기준으로 가장 최근에 생산된 쌀은 2013년산이다. 햅쌀이 묵은쌀보다 수분이 많고 점성이 강하다.

밥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도정일'이다. 쌀 품질의 차이는 생산일자보다 도정일자에 따라 나뉘는데 보통 가장 맛있는 밥은 도정 후 2주가 지나지 않은 쌀로 지은 밥이다.

결국 갓 도정한 것이라도 오래 묵힐수록 수분 등이 빠져 밥맛이 떨어지니, 쌀을 구매할 때는 용량이 큰 포장보다 금방 먹을 수 있는 1∼2㎏ 단위 포장을 찾는 게 좋다.

일부 대형마트는 도정기를 갖다 두고 당일 도정한 쌀을 판매한다. 소비자가 쌀겨와 씨눈을 얼마나 제거할지 선택하게 하는 곳도 있다.

도정하는 정도에 따라 현미에서 겨층과 씨눈을 완전히 제거해 현미 중량의 93% 이하로 도정한 것을 정백미, 쌀알 중에서 씨눈을 70% 정도 남기고 현미 중량의 95% 정도가 되게 한 것을 7분도미, 씨눈을 전부 남게 하고 현미 중량의 97%가 되게 한 것을 5분도미라고 한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쌀 포장지의 등급표시. 세 제품 모두 등급·단백질 함량 '미검사' 제품이다. /박정연 기자

◇쌀 등급표시제 있으나 마나 = 지난 2011년부터 쌀도 육류처럼 등급을 확실히 보고 고를 수 있는 시대가 오나 했더니 말짱 도루묵이 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양곡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2011년 11월부터 쌀 등급과 단백질 함량 표시를 의무화한 바 있다. 쌀 등급은 완전립(깨지지 않은 쌀알) 비율과 품종·순도 등이 높은 1등급부터 5등급까지 표시하도록 했다. 단백질 함량은 수(6% 이하), 우(6.1∼7%), 미(7.1% 이상)로 표기하도록 했다.

단백질 함량은 질소질 비료를 많이 쓸수록 높아진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밥으로 조리하면 밥이 금세 굳어 밥맛이 떨어진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제도 시행 2년 만에 농림축산식품부는 '현실화'를 이유로 쌀등급 표시를 기존 3등급으로 낮췄다. 5등급제 대신 '최상, 상, 보통' 3가지로 등급을 완화했다. 단백질 함량 의무표시도 임의조항으로 바꿨다.

결국 쌀 등급표시제는 제도가 제대로 안착되기도 전에 정부 스스로 완화해 소비자로부터 강한 불만을 샀다.

더 큰 문제는 쌀등급과 단백질 함량 검사를 안할 경우 '미검사' 표시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시중에서 미검사 표기된 제품은 10개 중 7개에 이른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2월 수도권에서 판매되는 브랜드 쌀에 대한 등급표시 실태를 조사한 결과, 92종 중에 등급검사를 하지 않은 '미검사' 제품은 71.7%에 달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