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생태] (76) 이리 늑대 승냥이

◇승냥이 = MBC 퓨전 사극 <기황후>를 보면서 '승냥이'라는 동물이 궁금해졌다. 왜 하지원 이름을 승냥이라고 불렀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려서부터 늑대와 이리 승냥이가 어떻게 다를까 궁금했다. 이솝 우화 양치기 소년이 한 말은 '늑대가 나타났다'일까? 아니면 '이리가 나타났다'일까? 늑대와 이리는 어떻게 다르고 승냥이는 어떤 동물일까? 정태춘의 노래 <탁발승의 새벽 노래>에 승냥이가 나온다. "한수야! 부르는 목소리에 멈춰 서서 돌아보니/ 따라온 승냥이 울음소리만/ 되돌아서 멀어지네." 정태춘이 부른 승냥이는 어떤 동물일까? 노래에 담긴 뜻보다 승냥이가 더 어렵다. 성경에는 양의 탈을 쓴 '이리'가 나올까?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나올까?

◇잃어 버린 말 '이리' = 이리는 옛말이 '일히(일희)'다. 늑대 소리를 "일~히~" 하고 흉내내어 보면 이리는 소리를 흉내낸 말이라고 추측된다. 서정범 교수가 쓴 <국어어원사전>에는 늑대나 승냥이는 어원이 안 나오지만 이리는 나온다. 조선시대 <훈몽자회>에 일히라고 나온다.

성경 번역을 비교해 보는 사이트에 가면 영어 wolf를 대부분 이리로 번역해 놓았다. 일부 승냥이나 늑대가 있지만 대부분 이리로 번역해 놓았다. 요즘 새로 번역되는 성경에는 일부 늑대라는 말이 있지만 아직도 이리라고 번역한 성경책이 더 많다. 그런데 어느 날 이리라는 말이 사라져 버렸고 지금은 죽은 말이 되었다.

김준근이 그린 <이리>.

◇한자로 찾아보는 이리와 승냥이 = 늑대와 이리는 한자로 랑(狼)을 쓴다. 옥편을 찾아보면 늑대 랑이 아니고 이리 랑이라고 나온다. 한자 옥편에는 늑대가 없다. 이리만 있다. 늑대는 어디서 온 말일까? 승냥이는 승냥이 시(豺)가 있다. 이리와 승냥이도 한자가 있고 어원도 있는데 늑대는 한자도 어원도 찾기 어렵다. 승냥이도 옛 조선시대 책에 '숭량이'라고 되어 있다. 이리와 승냥이는 어렵지 않게 어원과 한자를 찾을 수 있다.

◇새로 생긴 말 늑대 = 늑대는 어느 별에서 온 말일까? 먼저 국어 사전에서 늑대를 찾아본다. 늑대는 한자말이 없다. 그럼 우리말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게 되는데, 조금 더 찾아보면 늑대(勒大)라는 한자가 검색이 된다. 일본말에 늑견(勒犬)이라는 말이 있는 데 '느쿠데'라고 읽는다고 한다. 늑대나 늑견 모두 일본에서 조선 늑대를 이야기한다고 한다. 조선 늑대를 일본에서 느쿠데라 한다는 기록만 있고 다른 늑대 자료를 찾을 수가 없다. 옛 문헌에도 이리나 승냥이는 있지만 늑대라는 말은 없다. 1900년대 개화기 이후에 새로 생긴 말인 듯 보인다. 우리말 이리가 사라지고 국적 불명의 늑대가 표준어가 되어 있지만 어느 국어학자나 생물학자도 시원하게 늑대의 어원을 밝히는 사람이 없다.

MBC 퓨전 사극 <기황후> 포스터. 극중 기황후의 이름은 '승냥'이다.

◇소풀과 정구지 = 어릴 적 우리 집은 소풀(?)을 베어다 지짐을 만들어 먹었다. 객지로 고등학교에 갔을 때 소풀을 정구지라고 하는 친구와 입씨름을 했다. 소풀이 맞다. 아니다. 정구지가 맞다. 하면서 한참을 말싸움을 하다가 찾아보니 어이없게도 부추라는 말이 표준어였다. 이리와 늑대 승냥이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 본다.

◇남쪽 이리 북쪽 승냥이 = 늑대라는 말이 왜 표준어가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밝혀주는 책도 전문가도 없지만 일제 시대 이후 일본에서 수입된 말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검색해 보면 남한은 이리, 북한은 승냥이라고 불렀다고 추정할 수 있다.

남쪽에 '이리 떼를 막자고 범을 불러들인다'는 속담이 있는데 북쪽에서는 '승냥이를 쫓는다고 호랑이에게 문을 열어 준다'는 속담이 된다. 하나의 위험을 면하려고 하다가 더 큰 위험에 직면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리가 양으로 될 수 없다'라는 남쪽 속담이 북쪽에 가면 '승냥이가 양으로 될 수 없다'라는 속담이 된다. 속담 검색에서 남쪽은 이리라는 말을 많이 썼고 북쪽은 승냥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고 추측할 수 있다. 현대 동물 도감에 나오는 늑대와 승냥이는 다르게 생긴 갯과 동물이지만 옛날 우리 조상들은 이리와 승냥이를 그렇게 구별하지 않고 들개·산개처럼 야생 늑대를 이리와 승냥이로 불렀을 것이라 생각된다.

◇나쁜 늑대 = 남자는 늑대다. 양치기 소년과 늑대, 늑대 인간처럼 우리는 늑대를 나쁜 동물로 알고 있다. 어려서부터 돼지 3형제도 늑대가 괴롭히고 늑대가 엄마를 잡아 먹는 동화를 읽고 자란다. 늑대가 나쁜 동물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반대다. 야생 늑대는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지조와 절개가 있다. 무리지어 사냥하는 사회성이 아주 강한 동물이다. 동료가 죽으면 슬퍼하고 곡기를 끊고 슬퍼하는 정이 있는 따뜻한 동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늑대는 나쁜 동물이 되었을까?

먼저 기독교의 영향이다. 신자는 양이고 예수는 목자고 사탄과 이단은 양의 탈을 쓴 이리(늑대)다. 기독교 문명에서 만들어진 동화는 대부분 늑대는 나쁜 동물로 그려진다. 칭기즈칸으로 대표되는 아시아 대륙 세력이 유럽을 괴롭힐 때 서양 사람들에게 초원의 늑대 민족은 미개하고 미운 민족이었을 것이다. 기독교 중심의 유럽 문명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까만 머리에 동양인 모습을 하고 머리 속에는 기독교 중심 유럽 문명을 교육 받았기 때문에 우리 머리 속에도 늑대는 나쁜 동물로 의식화되어 있다.

오랜 세월 초원에서 살아온 몽골족과 늑대는 하나의 영혼이다. 몽골 사람은 스스로를 '푸른 늑대의 후예'라고 한다. 칭기즈칸을 '푸른 늑대'라고 부른다. 신화학자 김선자 교수는 그의 책 <오래된 지혜>에서 초원 유목 민족이 자연과 교감하고 생태적 사고를 하며 포기하지 않는 강인함과 끈질김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중국은 늑대를 다시 재조명하고 있다.

◇멸종된 늑대 =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해마다 100마리 이상 늑대를 잡았다는 기록이 있다. 엔도 키미오가 쓴 책 <한국 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를 보면 조선총독부 통계연보 기록을 정리해 놓았다. 해마다 100마리 이상 잡히던 늑대는 모두 어디 갔을까?

100년 전 조선 땅에는 개, 너구리, 늑대, 여우, 승냥이가 살았는데 지금은 늑대와 여우, 승냥이는 멸종되고 개와 너구리만 살고 있다. 늑대는 1960년대 남한 땅에서 공식 멸종되었다. 산에 숲이 우거지고 들에는 초원이 사라지면서 여우와 늑대가 살 땅이 없어진 것이다. 지금도 여우와 늑대를 복원하고 있지만 전망이 밝아 보이진 않는다. 이름마저 잃어버린 이리와 국적 불명의 늑대는 어떻게 될까?

/정대수(우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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