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경남도민생태·역사기행] (1) 거제

경남람사르환경재단은 2008년 람사르협약 제10차 당사국 총회가 경남에서 열린 사실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습지와 생태계의 보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리기 위해 여러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인데, 사람들이 누리는 자연과 문화·역사가 습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널리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에서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와 함께 맡아 하기로는 올해가 3년째다.

2014년 첫 나들이는 3월 19일 거제로 갔다. 거제는 빼어난 자연경관 때문에 역사·문화 따위는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또 거제의 역사·문화라 하면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 관련이 전부인 줄 아는 사람이 많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거제면 소재지에 모여 있는 옛 건물들을 둘러보면 거제도 뿌리가 어지간히 깊은 그런 고장임을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50명 일행이 가장 먼저 찾은 데는 거제향교였다. 향교는 알려진 대로 고려·조선시대 교육기관이다. 지금으로 치자면 공립 중·고등학교에 해당된다. 향교는 이런 교육 기능뿐만 아니라 선현에 대한 제사 기능, 일반 주민에 대한 풍속 교화 기능까지 함께했다. 거제향교는 아주 큰 편이다. 경남에서는 사천향교와 더불어 가장 크다고 손꼽히는데, 전체 공간도 너르다. 앞쪽 명륜당은 공부하는 공간이고 뒤쪽 대성전은 제사지내는 공간이다. 다른 향교는 명륜당이 낮은 데 있고 대성전이 높은 데 있지만 거제향교는 그냥 평지에 나란히 있다.

기성관에서 찍은 기념 사진.

더욱 멋진 것은 거제면사무소 바로 옆에 있는 기성관이다. 임금 궐패를 모시던 객사로서 고을의 중심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정면이 모두 아홉 칸으로 경남서는 통영 세병관,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 다음으로 네 번째로 큰 목조건물이다. 가운데 3칸은 지붕 옆면을 맞배지붕으로 살짝 높였고, 양쪽 3칸은 낮추어 지붕 옆면을 팔작지붕으로 마감했다. 단조롭지 않게 하고 또 생동감까지 주면서 한가운데 모셨던 임금 궐패를 높이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고 한다. 바로 앞 질청은 관아에 딸린 건물로 행정실 또는 도서관 구실을 하면서 고을 수령이나 관리 자제들이 여기서 공부를 했다. 'ㄷ'자 형태로 양날개에 살림방을 두고 가운데에 대청이 널찍하다. 사람들은 여기 마루에 앉아 뜨락에 심긴 나무들을 무심하게 쳐다본다.

거제향교를 둘러보는 참가자들.

이런 것보다는 거제초등학교 본관이 더욱 돋보인다. 다른 많은 지역도 그러했겠지만, 6·25 한국전쟁은 거제도를 피해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1907년 세워진 거제초등학교는 망가졌을 테고, 1953년 휴전이 성립된 뒤 거제 주민들이 뜻을 한데 모아 지금 건물을 지었다. 보통 초등학교에서는 느낄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그런 힘과 멋이 풍겨져 나온다. 서양식 석조 건물 외양이 뿜어내는 것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지역 교육을 위해 힘을 모으고 뜻을 보탠 이 지역 사람들의 소중한 마음씀이 더욱 고마운 것이다.

거제 주민의 뜻이 모인 거제초등학교 본관.

학동해수욕장 부산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옮겨간 데가 바로 신선대·바람의 언덕이다. 해금강 들머리 이쪽 비탈과 저쪽 해안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신선대는 그래도 몽동이나마 있지만 바람의 언덕은 온통 바위로만 해안이 이뤄져 있다. 바람의 언덕은 사철 가리지 않고 바람이 불어대지만 신선대는 바람이 잦아들어 무턱대고 앉아 있을 수도 있다. 바람의 언덕에서는 바다가 광활하게 펼쳐지고, 신선대에서는 바위와 몽돌 해안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일행은 바람의 언덕에서 한껏 봄기운을 바람으로 맞아들인 뒤 신선대로 몰려가 고즈넉하게 좌우로 펼쳐져 나가는 바다 분위기를 즐겼다. 그 가운데 몇몇은 쑥이나 냉이나 달래 같은 봄나물을 캐기도 했고.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를 볼 수 있는 바람의 언덕.

바람의 언덕에서 가장 멋진 데는 동백숲이었다.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피어서 나무에 매어달리거나 지고나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동백꽃들을 매우 잘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가운데로 난 산책로를 따라 스쳐지나가 버리고 말지만 몇몇 알뜰한 사람들은 동백 숲 속으로 들어가 이 모든 것을 누리고 즐긴다. 동백숲에서는 동백꽃도 잘 보이지만 바깥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랑 파도랑도 아주 느낌이 좋게 다가온다. 동백 숲이 내려주는 그늘도 좋고, 그 덕분에 사람들 말소리가 한 칸 더 멀리에서 들리는 것도 속세를 벗어난 듯하게 만들어준다.

바위와 몽돌 해안이 펼쳐지는 신선대 모습.

이제 마지막. 홍포 바닷가길이다. 홍포에서 홍(虹)은 무지개를 뜻한다. 무지개처럼 여러 가지 빛깔이 어우러져 아롱대는 동네라고 봐야 맞다. 하늘에서 해가 뉘엿뉘엿 기울 때 즈음이면, 바다와 바닷물과 바닷물이 튕겨내는 햇살과 바닷물이 품어안는 햇살 등등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황금빛에서 선홍빛까지 여러 가지로 빛난다. 여기에 더해 물안개까지 더해지면 바다가 통째로 자수정처럼 자주·보라로 물들기도 한다. 일행은 여차로 이어지는 도로 포장된 끄트머리에서 마을로 돌아나오는 길을 걸었다. 바람이 시원했고 풍경은 멋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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