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내 맘대로 여행] (7) 전북 군산시 근대문화유산거리

군산 여행은 시간 여행이다. 가깝고도 먼 근대로 향하는 여행.

멀리서 봄을 실어오는 서해를 앞에 두고 그렇게 과거로 향한 타임머신에서 내렸다.

◇1930년대, 어딘가에 서 있다

시작은 가슴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근대역사박물관이다.

장미동에 있는 근대역사박물관. '참 예쁜 꽃 이름을 딴 동네구나!'라고 생각하는 찰나, 군산의 장미엔 다른 의미가 담겼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다.

장미갤러리

장미동은 일제의 쌀 수탈 창구였던 도시를 상징한다.

작은 포구였던 군산은 1899년 5월 개항 직후 일본인이 쌀을 강제 수출하려고 개발한 새 도시였다. 호남과 충청의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보내는 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장미(藏米)는 쌀을 저장하는 마을이란 뜻이다.

개항장 거리엔 쌀 창고와 정미소·은행 등이 밀집했다. 지금은 당시 시대 상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근대역사박물관을 비롯해 그 인근에 당시 건물들을 고스란히 간직해 놓았다.

박물관 안에는 일제의 강압적 통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우리 민족의 삶이 담겨 있다. 1930년대 군산에 존재했던 11채의 건물을 재현해 놓았으며 체험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박물관을 마주하고 왼쪽에는 옛 군산세관 건물이 자리한다. 1908년 대한제국이 벨기에로부터 붉은 벽돌과 건축 자재를 수입해 지었다고 전해진다.

오른쪽에는 장미갤러리(해방 이후 위락 시설로 활용됐던 적산가옥)와 장미공연장, 미즈 카페(일제강점기 무역회사 미즈 상사)와 군산 근대미술관(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등이 과거와 현재가 교묘히 교차하는 공간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초원사진관

지금은 군산 근대건축관으로 이름을 바꾼 조선은행 군산지점. 식민지 경제 수탈에 앞장선 대표적인 금융기관이었다.

해방 이후 한국은행과 한일은행의 군산지점으로 바뀌었다가 유흥주점 간판이 달린 적도 있단다. 군산시는 이 붉은 벽돌 건물을 사들여 근대건축관으로 꾸몄다.

◇영화 속 한가운데 서 있다

장미동을 떠나 신흥동 일본식 '히로쓰 가옥'으로 발길을 돌렸다. 히로쓰 가옥은 우리나라에 있는 현존 일본식 가옥 가운데 가장 뛰어난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직접 집안 곳곳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인지 가옥을 구경하러 온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입구에는 내부를 구경하려고 벗어놓은 신발이 수북하다.

과연 이 사람들이 다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하며 조심스레 가옥 안으로 발을 옮겼는데 나름 여유 있게 관람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주인이었던 히로쓰는 포목상으로 돈을 번 일본인이다. 가옥 본채로 들어가는 대문은 전국시대 일본의 사무라이 가옥 구조를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마룻바닥 위를 걷다 보면 유별나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큰 지점이 있다. 바로 히로쓰의 방문 앞이다. 관리인은 이것이 무사 가옥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자객의 침입을 확인하는 하나의 도구로 이런 장치를 해놓았다는 것이다.

1990년 임권택 감독은 군산에서 <장군의 아들>을 촬영했다. 이곳은 야쿠자 두목 하야시가 살던 집이다.

2006년 최동훈 감독은 이곳에서 영화 <타짜>를 촬영했다. 이때 히로쓰 가옥은 고니의 스승인 평강장(백윤식 분)의 집으로 활용됐다.

히로쓰

◇국내 최고로 오래된 빵집 '이성당'

군산은 유명한 맛집이 몇 군데 있다. 군산시 중앙로 1가에 있는 제과점 이성당.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대전 성심당, 안동 맘모스제과와 함께 전국 3대 빵집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1920년대에 일본인이 '이즈모야'라는 화과자점으로 문을 열어 영업해오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인이 현재 상호로 바꾸어 운영 중이다.

언제 찾아오든 길게 늘어선 줄을 볼 수 있다. 이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앙금빵과 야채빵을 사기 위한 줄이다.

굳이 그 빵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곧장 빵집으로 들어가 다른 빵들을 구매할 수 있다.

이성당

히로쓰 가옥과 이성당 빵집으로 가는 길에도 놓치기 아까운 곳이 있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정원(한석규 분)이 운영하던 '초원사진관'.

지금은 사진관은 운영하지 않은 채 관광객들에게 개방돼 있다. 입구에는 다림(심은하 분)이 정원에게 보낸 편지봉투가 꽂혀 있다.

이곳을 찾은 사람이 엽서를 작성하면 별도의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군산시에서 보내준다고 한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그리운 이에게 혹은 나에게 편지를 한 통 보내보면 어떨까.

웬만큼 알려진 맛집들은 줄이 길다. 굳이 '그곳'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바다를 옆에 둔 식당을 찾아 생선구이를 시켜 먹는 것도 좋겠다. 항구 도시를 찾은 추억을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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