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길고양이들의 할매가 된 생선장수

이른 오전 손님들이 한 차례 몰아치고 난 뒤 인적 드물어진 아침시장. 좌판에 널린 생선 위로 눈부신 햇살이 고루 퍼진다. 마침 지나가던 손님이 숨죽인 채 꼬리만 흔들고 있는 장어를 가리킨다. 좁고 작은 낚시 의자에 몸을 걸친 주인이 얼른 장어 한 마리를 건져 먹기 좋게 손질한다.

다시 뜸해진 발길. 오늘따라 장사가 신통치 않다. 손질하고 남은 생선 대가리와 뼈나 치울 심사로 봉지를 펼친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누군가 계속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 뒤를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고양이 한 마리가 자신을 향해 눈을 고정한 채 앉아 있다.

"배고픈 표정 같았어. 한참을 앉아 있더니 천천히 다가오는 거야. 손질하고 남은 생선 대가리를 던져 줬더니 허겁지겁 먹어 치우더라고. 그 이후로 다음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또 찾아오는 거 있지."

   

창원시 진해구 병암동 아침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김봉애(64) 씨는 생선뼈와 대가리를 한껏 넣고 끓인 국을 대야에 쏟아 부으며 말했다. 또 다른 대야에는 사료가 한가득 채워져 있다. 6년 전 우연히 고양이에게 생선을 던져 준 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일이다. 대야에 국이 채워지기 무섭게 고양이 한두 마리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나타난다. 온몸을 움츠린 채 잔뜩 경계하는 눈빛이다. 대야 앞에서 조심스런 걸음을 멈추더니, 본격적으로 고개를 파묻고 먹기 시작한다. 사료가 담긴 대야에는 이미 다른 고양이가 한 자리를 차지해 배를 채우고 있다.

그렇게 그저 안쓰러운 마음에 밥을 챙겨 줬던 길 고양이 한 마리가 지금은 20마리 가까이 된다. 아침, 점심, 저녁…. 때 되면 찾아오기도 하지만, 배고플 때마다 수시로 모습을 드러내 장사하랴 고양이 밥 챙기랴 봉애 씨 손길은 종일 분주하다.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와 시장에 도착하면 대여섯 마리가 벌써 줄지어 앉아 있어. 좌판 펼치기 전에 이 녀석들 밥부터 챙겨주지. 안 그러면 일을 못해. 계속 내 뒤를 따라다니거든."

아침에만 잠깐 서는 시장이지만 유일하게 늦은 오후까지 장사를 하는 봉애 씨는 단골손님이 유독 많다. 40년간 한결같이 자리를 지킨 덕도 있지만, 소박한 시장 치고 숭어, 광어, 도다리 등 제철마다 내놓는 생선 종류가 다양하고 물량도 많기 때문이다.

창원시 진해구 병암동 아침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봉애 씨. 그는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일명 '고양이 할매'로 통한다. 매일 생선뼈와 대가리를 넣고 국을 끓여 길고양이들에게 주기 때문이다. 봉애 씨가 끓인 국을 대야에 쏟아부으면 어느새 길고양이들이 속속 찾아와 먹고 간다. /문정민 기자

이는 입맛 다른 고양이 녀석들 취향에 맞춰 생선을 다양하게 골라 주기에 더없이 좋기도 하다. 숭어 대가리를 특히 좋아하는 녀석, 고등어 뼈는 입에도 못 대는 녀석, 장어 꼬리라면 사족 못 쓰는 녀석까지. 찾아오는 고양이마다 특색을 살펴 맞춤식 식단(?)을 제공한다. 생선 대가리가 크고 딱딱하다 싶을 때는 국으로 푹 삶는다. 이왕 하는 거 더 맛있게 먹으라고 소금으로 간까지 맞추며. 어린 새끼이거나 늙은 어미가 찾아올 때는 손님에게 파는 생선을 선뜻 잡아 씹기 좋게 썰어 준다.

"남은 생선 대가리나 뼈는 손님들이 한 번씩 매운탕 거리로 쓰기 위해 달라고 할 때 있어. 그럴 때마다 제철이 아니라는 둥 맛이 없다는 둥 둘러댄 후 녀석들 주기 위해 따로 챙겨 놓지. 고양이 때문에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네. 참…."

생선 한 마리라도 더 팔기 위해 새벽부터 이른 저녁까지 찬물에 수십 번도 더 손을 담그는 봉애 씨가 이렇듯 성가신 일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배고픈 시절을 겪어봤기 때문. 맏딸로 태어나 결혼하고 자식 셋 키우기까지 넉넉지 못한 형편으로 주린 배를 잡아야 했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람도 굶주리면 힘들고 서럽기 마련인데 말 못하는 짐승은 오죽하랴. 길 고양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여전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앞서 편견 따위 개의치 않는다.

이런 봉애 씨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 지 살갑게 불러도 먼발치 떨어져 주위를 살피는, 그야말로 친해지기 힘든 녀석들. 바랄 것 없이 아낌없이 주는 봉애 씨도 때론 섭섭할 때도 있을 법. 하지만 밥은 줘도 정은 주지 않는다며 서운할 것 없다고 잘라 말한다. 행여 한 녀석이라도 죽게 되면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 봐서다.

딱히 예뻐하는 녀석이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피치 못한 사정으로 쉬게 되는 날이면 고양이 밥부터 걱정하는 봉애 씨. 봄을 재촉하는 비로 인해 장사를 접어야 했던 어제도 녀석들 생각에 편치 못한 몸을 뉘어야 했던 그는 영락없는 '고양이 할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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