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운 복직투쟁을 벌이는 사람들] (4) 진주의료원 해고 간호사

지난해 경남도와 홍준표 경남지사의 갑작스러운 폐업 발표와 발 빠른 실행(?)에 정은화(여·26) 씨는 남들이 평생 한 번 겪기도 어렵다는 회사(병원) 폐업을 두 번이나 지켜봐야 했다.

나이에 비해 정말 화려한 경력(?)을 소유한 그는 친구와 노조원으로부터 "폐업을 부르는 여자"로 놀림 받기도 한다.

지난 14일 진주의료원 건물 바로 옆 건물로 옮긴 노조(보건의료노조 진주의료원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정 씨는 해고자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주 밝았다. 그는 노조 조합원 가운데 20대 간호사 중 마지막까지 싸우는, 계약직 노동자 중 끝까지 싸우는 '유일한' 이다.

지난해 5월 29일 경남도의 폐업 신고 때까지 명퇴나 조기퇴직을 하지 않고 남아 싸운 직원 수는 70명이었다. 이들 모두 노조원으로 지금까지 재취업한 이는 20여 명, 나머지 40여 명 중 10여 명은 재취업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매일 사무실을 오가며 싸우는 이들은 15명이고, 집회를 하면 20명가량이 참여한다. 그는 매일 사무실로 출근하는 15명 중 한 명으로 막내다.

지난 14일 진주의료원 해고자 정은화 씨가 새로 옮긴 노조 사무실에서 재개원을 촉구하는 선전물을 손수 만들고 있다. /이시우 기자

2010년 2월 진주 한 대학 간호과를 졸업하고서 그해 10월 갓 문을 연 진주 한 병원 간호사로 첫 사회 진출을 한 그. 그런데 7개월이 지난 이듬해 5월 병원이 갑자기 문을 닫아 첫 직장부터 실직을 경험했다. 2개월 뒤 육아 휴직 대체근무 인력(필요시 간호사)으로 진주의료원에 들어가 3개월 뒤 공개채용에 응시해 다시 입사했다. 물론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었다.

진주의료원에는 계약직 간호사가 많았다. 병동당 간호사 3∼4명(병동당 10∼12명 근무)은 계약직이었다. 물론 대부분 입사 2년을 넘긴 무기계약직이었다. 보너스 200%와 약간의 수당 차이를 빼고는 정규직과 계약직 간 임금 격차가 크지 않고, 계약직·정규직 간 근무 시 차별도 거의 없어 계약직도 대부분 노조에 가입했다.

재입사한 지 8개월 지난 2012년 7월부터 월급이 제때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다른 선배 간호사들은 임금 체불을 이미 일상적으로 경험해서인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2013년 2월 26일 의료원 폐업 방침 발표를 접했다. 불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설마'가 더 컸다. 그런데 3월 말이 되니 환자 상당수가 빠져나가고, 의사들이 거의 다 그만두는 걸 보면서 폐업은 그에게 '실제'로 다가왔다.

창원·진주를 오가며 평생 처음 집회·시위에 참가했다는 그는 "홍준표 지사가 우리더러 '강성노조', '강성노조원'이라던데,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조차 몰랐다. 그냥 노조는 가입만 했지 일하느라 바빠 가입한 사실도 잊을 정도였으니까. 우리 조합원은 조금만 기쁘면 '헤' 웃고 조금만 슬프면 울보가 되는데 이들이 무슨 '강성 조합원'이라고 참…. '감성 조합원'이면 또 모르겠다"며 경남도에 '킥' 한 방을 날렸다.

그는 폐업은 자신이 부른 게 맞다고 했다. 정 씨는 "어르신들이 '홍준표' 찍으라고 해서 그 말만 듣고 찍었다. '어른 말만 잘 들으면 된다'는 옛말은 순거짓말이었다. 지금 내가 이렇게 호되게 당하고 있으니 말이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5월 지부장님이 고공농성을 했는데, 나는 그때까지 TV에서도 고공농성을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평범하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1년 넘게 싸우면서 대한민국은 진짜 서민과 약자가 살기 어려운 나라라는 걸 알게 됐다. 솔직히 이민 가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요즘은 서서히 아버지와 거리감도 느낀다. 그는 "아빠는 '그래도 홍 지사가 잘하는 게 있지 않으냐'고 하신다. 주로 그런 분들과 어울리시니 딸이 보는 세상과 아빠가 보는 세상이 이제는 달라도 너무 다른 걸 느낀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폐업 반대·재개원 투쟁 1년은 그저 해맑고 좋은 간호사만 꿈꾸던 그를 서서히 싸움닭으로 만들었다. 그는 "홍 지사가 나를 배릿다(버렸다)"며 배시시 웃는다.

끝으로 그는 결론이 나올 때까지 싸우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해고 뒤 퇴직금 등을 정산받고 3개월 정도 실업수당을 받아 생활했다.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전직 병원 3개월 치 체불임금이 작년 12월에 나왔다. 재개원을 위해 계속 싸우라는 계시인 것 같다. (웃음) 어렵게 살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는 여성조합원들도 있고, 대부분 가장인 남성 조합원들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싸운다. 그나마 나는 혼자다. 친구들이 '이직하지 왜 그렇게 오래 싸우느냐'고 묻곤 한다. 괜히 잘난체하는 것 같아 말 못했는데 친구들에게 그 답을 건네고 싶다.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지키려고 이 자리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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