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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사에서 대학총장까지 37년 교직 인생

[도교육감 입후보 예정자 인물탐구] (3) 김선유(60) 진주교대 총장

이미지 기자 image@idomin.com 2014년 03월 17일 월요일

김선유 예비후보가 최근 박종훈·김명룡 예비후보에게 '통 큰 단일화'를 제안했다. 그는 이번 경남교육감 선거가 보수와 진보의 다툼이 아니며, 부패와 무능을 청산하는 것이 도민들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진주교대 총장이기도 한 그는 37년 교육경력을 앞세우고 있다. '참교육'을 고민했던 초·중등교사를 거쳐 교대에서 예비교사를 양성했다. 권정호 전 교육감이 멘토라고 밝힌 김 예비후보는 원칙과 정도를 중요시한다.

◇초·중등·고등교육 섭렵 = 김선유 진주교대 총장은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 자락에서 가난한 훈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산 김씨' 자손으로 한학자였던 조부는 가세가 기울자 선조가 살았던 하동 옥종을 떠나 산청 덕산으로 이사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픈 몸에도 서당을 열어 동네 청년을 모아 한학을 가르쳤고, 집안 생계는 어머니가 바느질과 농사일 품앗이로 이어갔다.

김 총장은 덕산초등학교에 입학해 마산 월영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입시가 있던 당시 6학년 담임교사의 전보로 진학 공부가 어려워지자 부친은 그를 마산 큰아버지에게 의탁했다.

마산동중·마산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창시절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에 갔지만 가난 탓에 수업료를 제때 내지 못해 결석처리가 많았다. 김 총장은 세계지도를 외우고 수학 공부를 하며 외로움을 달랬다.

대학 진학도 가난이 발목을 잡았다. 그는 대도시 대학을 원했지만, 당시 2년제였던 진주교육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졸업 후 1976년 거창 신원초등 산수분교에 임용돼 아이들을 가르쳤다.

교대 재학 당시 심화과정 학과로 수학을 선택한 김 총장은 1975년부터 1982년까지 동아대와 부산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83년 산청 송계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수학 교사가 됐다.

1987∼1988년 진주 명신고등학교 재직 시절에는 당시 민주화 열망에 따라 전교조의 전신으로 결성됐던 '전국교사협의회 진주지회장'을 맡아 참교육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많은 교사가 독재정권의 억압과 권위주의 행정, 비교육적 입시교육에 좌절해 있던 시절이었다.

김 총장은 당시 '교육을 민주화하고 학교를 투명하게 운영하라, 학부모에 촌지를 받지 말자'는 교사들의 목소리는 누구나 느끼는 교육문제였고 상식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훗날 교사협의회가 전교조로 합법화됐지만 당시 많은 동료가 교직을 떠났다며 더 늦어지기 전에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던 중 1988년 모교의 제안으로 조교를 시작해 박사과정과 시간강사를 보내며 1993년 진주교대 교수로 임용됐고, 2011년 동료 교수들과 직원들이 뽑은 제6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2012년부터 2년 동안 경남지역 14개 대학 총장들과 경남도교육감이 참여하는 경남교육발전협의회 회장을 했고, 지난해에는 전국교원양성대학교 총장협의회 부회장을 맡았다.

   

◇원칙 강조…멘토는 권정호 전 교육감 = 김 총장은 품격과 인성 등 '사람됨'을 강조하고 이념에 앞서서 상식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주의다. 삶의 좌표가 '원칙을 중시하고 정도를 걷는 것'이라고 밝힌 그는 한학자 집안이었던 집안 내력과 산청 남명 조식 선생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지난 2011년 9월 진주교대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앞세웠던 것도 '품격을 갖춘 초등교사 양성'이었다. 국제적인 마인드를 가진 초등교사, 다문화적 소양을 갖춘 지역사회와 함께 초등교육을 선도할 수 있는 교원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에 개교 90주년이었던 지난해 교육역량강화대학, 입학사정관제 선도대학, 성과목표제 우수대학, 다문화교육 거점 대학 등으로 지정되는 성과를 얻었다.

김 총장은 최근 펴낸 <아이들의 행복한 아침을 꿈꾸며>에서 "남명 선생의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덕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남명 선생을 얼마나 닮아가고 있을까 돌아보게 된다"고 밝혔다.

그의 멘토는 권정호 전 교육감이다.

김 총장은 대안학교의 '모범'이라고 보는 태봉고등학교 성공에 의미를 깊게 둔다. 학교 부적응 문제학생들이 가는 학교라는 편견을 깼고, 일반적인 장학사나 교장 등 교육행정가가 아니라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운영을 맡겨 대안교육의 전문성을 존중했다고 평가했다. 태봉고등학교는 권정호 전 교육감의 업적이다.

김 총장은 <아이들의 행복한 아침을 꿈꾸며>를 통해 "권정호 선배님은 진주교대 출신으로서 처음으로 모교 교수가 됐다. 초·중등학교 교사를 같이 거쳤다는 점에서도 나온 동질감이 있다. 대학도 선후배 관계이기에 후배인 나의 각별한 멘토가 되었다"고 했다.

◇경남교육 정책 대안은 '유보' = 김 총장은 도민들이 경남교육에 실망하는 이유는 '부패'와 '무능'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리더십과 전략부재가 문제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김 총장이 그동안 경남교육 정책에 대해 밝혀 온 입장을 살펴보면 단안을 내기보다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인다. 무상급식에 대해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라고 밝히면서 세금을 내는 도민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과학적이고도 세밀한 연구가 필요해 '유보'될 수 있다고 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도 개별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얼마나 일치하느냐는 후 순위이며, 먼저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유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유연하지 못한 꼿꼿함이 그에게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김 총장은 자신도 <아이들의 행복한 아침을 꿈꾸며>에서 "조금은 고지식하다 싶은 인생관이 나의 미래조차 바꾸어 놓았다. 교대생 시절 원하는 학반을 신청하러 출근시각인 오전 9시 정각에 교수를 찾아갔다. 하지만 이미 학생들이 신청을 해놓고 갔더라"는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대학이 스스로 정한 원칙과 규칙조차 따르지 않아 실망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이번 교육감 선거에 나서면서 "선거 같은 정치적 경험이 부족하다. 선거자금이나 조직력을 믿고 나선 것이 아니라 부패와 무능에 빠진 경남교육을 바로잡고자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그래서 그는 경남교육을 바꾸려고 나선 후보들이 따로 갈 것이 아니라 단일후보를 정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이력>

◇김선유(1954년 5월 23일생)

1972년 2월 마산고등학교 졸업

1972년 진주농림교육원 잠업과정 연수·농사

1976년 2월 진주교육대학 졸업

1976∼1983년 거창 신원·울산 남목·양사초등학교 교사

1983∼1988년 산청 송계·진주 명신고등학교 교사

1987∼1988년 전국교사협의회 진주지회장

1988∼1992년 진주교대 조교

1993년 8월 동아대학교 대학원 해석학 전공(이학 박사)

1993∼2011년 진주교대 교수

2011년 9월∼ 진주교대 총장

2012∼2013년 경남교육발전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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