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외형상 예술계는 봄날이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위원회를 꾸리면서 국민의 문화권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책무 등을 명문화한 문화기본법 제정안을 비롯해 예술인복지법, 공연법, 저작권법,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문화 재정 2% 달성을 약속했고 지역문화진흥법, 지방문화원진흥법 등 3대 문화기본법을 완성한 것이다.

이미 문화예술 행정은 한국형 문화 거버넌스인 중앙정부-문화예술위원회-지방정부-문화재단이라는 4개의 지원 주체가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적으로 정책을 펼치는 시대가 되었다.

중앙정부 중심의 예술 진흥이 지자체로 대거 이관되었고, 국가 지원시스템의 많은 프로그램이 수많은 단체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이런 것만 보면 외형적으로 봄날이 오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왜 경남의 예술계는 냉기가 가시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원했던 법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는데 정작 지원해야 할 공무원들은 모르고 있다. 지원에 대한 '간섭'도 경남도의 요구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요구가 더해지고 여기에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요구까지 더해져 문화단체와 문화인들은 이중삼중의 부담을 져야 한다.

국가지원시스템이라는 곳이 아니면 지원 신청도 할 수 없고 여전히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은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항간에선 요즘 경상남도 문화예술과는 무엇을 하는지 묻는다. 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 어려운 일들을 떠넘기고 뒷짐을 진 듯해서 하는 말이다.

경남의 문화예술지원 체계와 문화예술 행정 서비스가 여기저기서 뒷걸음질치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경남도와 진흥원이 예산처리 방식의 통제를 통해 문화예술 단체와 관계를 '갑'과 '을'로 만들어가며 구조상 관리·통제·감시자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예술 행정은 서비스가 기본이다.

영국이 1945년 예술평의회(Arts Council)를 창설하면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며 세운 원칙이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다. 팔길이 원칙은 하나의 지향점이 되어 공공 분야 예술 지원이나 문화예술기관 운영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경남의 문화예술 지원 정책은 관료 위주의 통제적 방식에 머물러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팔길이 원칙이 아니라 손바닥 원칙(palm's length principle)이라는 비판을 새겨 들어야 한다.

물론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이 예술계 역시 그에 상응하는 합리성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도덕적 해이가 원칙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경남의 문화예술 생태계는 오히려 파괴되고 있다는 지적, 예술계의 실질적인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는 지적.

이것이 개선되어야 예술의 새싹이 돋아나는 봄날이 오는 것이다.

/황무현(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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