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포늪에 오시면] 봄이 오는 우포에서

◇철새가 어때서?

올해 6월이 되면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을 뽑는 선거가 있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철새 정치인'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새들이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 열심히 돌아다니는 모습에 빗대어, 선거를 앞두고 이 당 저 당 옮기고 어디 갈까 기웃기웃하는 인간들을 표현한 단어입니다. 시베리아처럼 영하 40도 추위와 먹이 부족을 피해 수천킬로미터 머언 거리를 날아오는 철새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요? 철새들이 "그렇게 수준 낮게 말하고 생각하는 니는 나를 우째 보고 그런 말을 하노? 니 수준에서 날 보는갑는데 난 그게 아니거든"이라면서 하늘 위에서 시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우포늪을 찾는 겨울철새 중 부리가 큰 노랑부리저어새를 유심히 보노라면 먹잇감을 찾기 위해 저렇게 열심히 살아가는구나 하는 탄성과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하는 동기부여를 받습니다. 젊은이들 취업이 힘들다고 합니다. 노랑부리저어새처럼 대학생부터 좀 더 일찍 자기가 가고 싶은 회사의 직원이다 생각하고 행동하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취업을 희망하는 회사에 대해 이웃 주민들이나 전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이미지를 알아보는 일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결과를 정리하여 신문에 투고하고 그 회사 사보에 기고하여 본인의 의지와 열정을 알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한 것 없이 뽑히려는 생각만 말고 그 회사가 원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면서 노랑부리저어새처럼 열심히 움직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습지와 인간

제방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포늪생태관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대대제방이 나옵니다. 주매제방도 있고 목포제방, 사지포제방도 있습니다. 가장 먼저 쌓아졌다는 대대제방이 인간과 습지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됩니다. 우포를 아는 분들은 1930년대 대대제방을 일본이 쌓았다거나 조선시대 지도에 우포늪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 전에 우포늪에 주민들 삶의 흔적이 없을까요? 이 부근에서 집단으로 거주한 사람 흔적은 대합면 주매리 약 1500년 전 창녕형 가야토기들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포늪에서 살아온 사람의 역사는 적어도 1500년입니다. 우포 인근에 청동기 유적은 있지 않겠지만 이렇게 가야 사람의 흔적은 있습니다.

우포늪 풍경

◇재실 이야기

우포늪 인근엔 다양한 성씨들이 마을을 이루면서 수백 년 살아왔기에 재실들이 많습니다. 우포늪 인근 한 분께 물으니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시면서 "대합면 주매마을의 장연 노씨 재실(관호재), 이방면 장재리 소목마을 창녕 성씨 재실, 이방면 옥천리 공씨 재실, 목포 제방 부근 석씨 재실, 유어면 세진리 창녕 조씨들 재실이 있다"고 하십니다.

주매마을의 재실에 들어가니 본채와 고지기가 살던 집이 있었습니다. 마루에 보니 나무로 만든 재떨이도 보였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다가 마을의 많은 분들이 모여 앉아 담배 피우시면서 무슨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보통 재떨이가 아니고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재실이니까 종중의 대소사(大小事)와 마을 관련 이야기를 주로 하셨을 것은 당연하고, 애들이 버릇없게 굴 때면 "요즘 젊은 아이들 버르장머리가…" 하시지도 않았겠나 상상도 해 봅니다.

선친 들려주신 이야기가 불현듯 생각납니다. 이 마을과 이웃마을의 처녀와 총각이 사랑을 했는데 문제는 성씨가 같은 데 있었습니다. 보호자를 불러 멍석에 말고 구타하였다고 합니다. 마을 기강을 잡기 위해 회의를 한 후 본보기로 벌을 내린 것입니다. 처녀 아버지가 안 계셔서 대신 오빠가 동생 관리 못한다고 맞은 것입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동성동본(同性同本)의 결혼이 불가했던 당시 이처럼 마을 기강에 피해를 주는 중대한 일을 저질렀다고 판단되면 하고 했던 멍석말이입니다. 다른 일들도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관심을 가지면 이런 것들이 마을 홍보에도 쓰이고 관광거리로도 활용할 수 있겠지요.

어느 해설사분이 웃으며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우포늪에 못가서 봄을 못느끼겠다고 하니 남편이 "고개 숙여 땅 밑을 보라"고 했답니다. 특정한 멀리 있는 곳을 생각지 말고 가까이 있는 곳을 유심히 잘 보라는 말이지요.

우포늪 주위 산을 보니 산수유, 매화나무가 꽃을 피우고, 땅 위 양지바른 곳엔 광대풀들이 빠알간 작은 꽃들로 눈길을 사로잡는데 냉이도 벌써 꽃을 피웁니다. 이전에 우포늪에 온 어떤 사람이 "이런 곳에서 별을 보면서 살고 싶다"고 하던데 봄날엔 땅위 힘차게 올라오는 작은 풀들을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반갑게 말을 걸면 어떨까요? 그러한 풀들과 놀던 어린 시절과 어머니 해주시던 반찬이 생각나 추억에 잠길 수도 있겠지요.

우포늪 봄 풍경

◇할머니와 봄나물

제가 근무하는 우포늪생태관에는 건강하고 즐겁게 일하시는 할머니들이 계십니다. 우포늪에서 일하면 겨우내 추위를 이겨낸 연한 녹색의 생명을 느낄 수 있는 봄의 아름다움이 좋습니다. 할머니들이 오래전부터 먹어오던 나물 반찬을 먹는 새로운 경험도 합니다. 며칠 전 할머니들에게 "광대풀이 피니 봄이 오기는 왔습니다" 하니 한 분이 "며칠 전에 냉이랑 반찬해서 드셨는데…" 했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제가 광대나물 반찬을 먹었습니다. "광대나물도 먹어요?" 하니 "그럼요!" 하면서 광대풀이라 하지 않고 '장구풀'이라 했습니다. 잎이 장구 모양이라 그런가 생각만 하다가 다른 이야기 하셔서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그 나물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오늘 독특한 것을 먹어봤네'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포늪 인근 어른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책에서만 보고 그냥 지나가던 많은 풀들과 나무들의 쓰임새를 듣고 또 나물로 먹어보기도 하게 됩니다. 이에 대한 기록은 관광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전통지식을 남기는 가치있는 일일 것입니다.

봄의 질경이 싹

/노용호(창녕군 우포늪관리사업소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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