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67) 홍대규 고성 산하꾸지뽕 대표

"생 막걸리를 만드는 것은 생명을 만드는 일입니다. 꾸지뽕 생 막걸리에 제 인생을 모두 걸고 있습니다."

색다른 막걸리다. 말 그대로 '색'이 다르다. 빨간 꾸지뽕을 넣어서 주황빛이 난다. 거슬리지 않는 단맛에 청량감이 감돈다. 예쁜 색깔만큼이나 맛도 당긴다.

고성에서 꾸지뽕과 민들레 진액 등 가공품을 생산하는 산하꾸지뽕 홍대규(67) 대표는 적지 않은 나이이지만, 그 열정만큼은 여느 젊은 CEO 못지않다. 홍 대표 일을 돕는 35살의 아들 창하 씨마저도 아버지의 '기운'에는 혀를 내두른다.

홍 대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꾸지뽕을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들레와의 만남

홍 대표가 민들레와 꾸지뽕나무 등 민간에서 약으로 쓰는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된 뿌리에는 '유자'가 있다. 유자는 홍 대표에게 이루지 못한 꿈이고, 평생의 한이다.

"1972년 제대 후 우연히 유자를 알게 됐습니다. 인생을 걸고 무조건 유자를 심으려고 마음먹었죠. 퇴비도 주고 모든 준비를 다 했는데, 결국 주변 상황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동안 민들레와 꾸지뽕에 관심을 두면서도 유자에서 눈을 뗀 적이 없습니다. 요즘은 유자가 특별한 취급을 못 받지만, 25년 전에는 '대학나무'라고 불렀어요. 유자나무 2그루만 있으면 자식 대학 공부를 시킨다는 의미였죠. 40년 전 유자나무를 심었다면 엄청난 부를 쌓았을 겁니다."

시대를 미리 읽었지만, 본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이루지 못한 꿈. 그 미련은 지금까지도 가슴 깊이 남아 있었다.

홍대규 고성 산하꾸지뽕 대표가 꾸지뽕나무 열매를 들어 보이고 있다. 앞줄 왼쪽은 꾸지뽕 막걸리, 오른쪽은 진액. /이원정 기자

그러다 민들레를 알게 됐다.

"막노동을 하다가 목이 아픈데 무슨 병인지 아는 병원이 없는 겁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민들레를 권유했습니다. 질경이와 민들레 등 민간요법으로 3개월 만에 나았습니다."

민들레의 효능에 푹 빠진 홍 대표는 민들레를 가공해 자신과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홍 대표 주위에는 민들레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민들레를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종묘상에서 공급받는 것도 아니고, 씨앗을 사오는 것도 아니었다. 고성뿐 아니라 도시락을 싸서 거제 구석구석까지 찾아다녔다. 험한 환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민들레는 생존을 위해서인지 뿌리가 땅 깊이 수직으로 뻗어 있다. 그래서 뿌리를 파내는 데 어려움이 많아 전용 호미를 주문 제작하기도 했다.

홍 대표는 '산하민들레'라는 회사명으로 민들레 진액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그런데 민들레 가공은 여러 가지 애로가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개발하려 했지만 벽에 부딪혔다.

"민들레는 자랄 때는 부드러운데 데치거나 절이면 질겨져 먹기 힘듭니다. 또 토종 민들레는 여름에는 잎이 없어져 봄과 가을에만 잎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식품 가공에 한계가 있어 대체 작목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꾸지뽕에 건 인생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꾸지뽕이었다. 8년 전이다. 하지만 민들레와 마찬가지로 꾸지뽕에 대해서도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꾸지뽕을 구하려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녔다.

직접 발품을 팔다 보니 꾸지뽕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각 종류의 성질 등은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 합천으로 의령으로 사방을 다녔지만, 모처럼 찾은 나무도 대부분 열매가 맺지 않는 수나무였다. 그러다 열매가 달린 품종을 보면 산삼이라도 발견한 양 들떠 무조건 구해와 접을 붙였다.

홍 대표가 수집한 수많은 꾸지뽕나무 중에서 열매가 열리는 품종은 6가지. 여러 번의 시험 끝에 그중에서 열매가 굵고 수확 시기 등이 적합한 한 품종을 지난해 최종 선택했다.

"보통은 접을 붙인 후 2~3년이 지나야 열매가 달리는데, 이건 첫해 바로 열매가 맺습니다. 열매도 크고 품질이 좋아요. 소문을 듣고 찾아간 시골의 한 할머니 집에서 구한 꾸지뽕나무입니다."

번식 방법을 찾는 데도 오래 걸렸다. 삽목(모수(母樹)의 가지를 절취하여 토양에 꽂아 발근시키는 영양번식법)이 가능하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시도했지만, 성공률은 10% 정도. 결국 3년간 시도하다 실패하고 뿌리 접을 1년 시도했지만 이것 역시 실패했다. 그렇게 4년의 실패 끝에 접붙이기 방법을 쓰고 있다.

◇주황색 막걸리에 빠지다

어려운 결단을 했다. 바로 막걸리 이야기다.

홍 대표는 막걸리가 저급주로 취급받는 것에 대해 성토했다.

"막걸리는 살아있습니다. 온도에 굉장히 민감하죠. 그게 안 지켜지니 맛이 변하는 겁니다. 마인드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좋은 재료와 기술로 만든 막걸리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름철 차 내부 온도는 30도 이상인데, 그런 차로 운반하면 한 시간만 지나면 변화가 옵니다."

홍 대표는 유통을 위해 영하 1도 냉장차를 도입했다.

처음 꾸지뽕나무를 키우면서 모종을 키우려고 씨를 빼내다 보니 분리된 과육은 쓸 곳이 없었다. 과육으로 막걸리를 담가 보니 특유의 맛과 색깔로 직접 마셔본 지인들의 반응이 좋았다.

유자 등으로 막걸리를 만들기도 하지만, 특유의 신맛을 숨길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14~20브릭스까지 나오며 단맛이 중심인 꾸지뽕은 막걸리 재료로 딱이었다.

홍 대표는 부산 신라대학교 전통주 산학협력단에서 교육받고 막걸리 제조 자격을 취득했으며, 김해 양조장에서 3개월간 실습하며 실무를 익혔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꾸지뽕의 특성 때문이었다. 책을 봐도 해결되지 않았다. 직접 부딪치며 익히는 수밖에 없었다.

"지방 성분 때문에 제조 과정에서 거품이 많이 났습니다. 2년간 고민하고 연구하다 결국 지난해 8월 '꾸지뽕 열매를 애용한 막걸리의 제조 방법 특허'를 취득했습니다."

◇생산·가공·유통 아우르는 6차 산업으로

홍 대표는 "최종 가공품 생산까지 해야 농촌이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꾸지뽕을 가공하는 데 문제는 또 있었다. 꾸지뽕은 씨 분리가 쉽지 않다. 가운데 씨가 있는 사과와도 다르고, 씨가 작고 부드러워 그냥 먹을 수 있는 오디와도 달랐다.

꾸지뽕 전용 기계가 없어 독일에서 포도씨를 분리하는 기계를 도입했지만, 씨가 단단한 포도와는 달리 꾸지뽕은 씨가 은근히 여렸다. 다시 머리를 싸매고 이 기계를 꾸지뽕에 맞게 개조했다.

우여곡절 끝에 막걸리를 개발했지만, 아직 정식 판매는 하지 못하고 있다. 주류 등록은 했지만, 식약처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류 등록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요즘은 새로 술 제조를 하는 사람이 드물어 관공서에서도 잘 몰랐던 부분입니다. 그런데 CU에 납품하기로 했는데, 그쪽에서 원하는 서류 중에 식약처 허가 서류가 있는 겁니다. 현재 식약처 기준에 맞게 모든 것을 수정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허가받기가 쉽지 않네요. 이달 중으로는 허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산하꾸지뽕에서는 꾸지뽕과 민들레 진액을 판매하고 있으며, 향후 인스턴트 가루차 등을 개발할 계획이다. 열매로 젤리나 사탕, 잼, 꾸지뽕을 넣은 빵 등의 제품도 개발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차 문화를 바꾸고 싶습니다. 커피는 물론 녹차도 카페인 때문에 꺼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옛날부터 민간에서 많이 쓰던 꾸지뽕으로 몸에 좋은 우리나라 차를 만들어 보급하고 싶습니다. 꾸지뽕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민들레와 꾸지뽕 진액은 고성군의 '공룡나라 쇼핑몰' 등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전화 문의는 055-673-4272.

<추천이유>

◇예권해 도농업기술원 강소농지원단 농업경영유통전문가 = 산하꾸지뽕 홍대규 대표는 수년전부터 열매 맺는 야생 꾸지뽕을 기능성 소득작목으로 발전시켜 생과 생산에서 꾸지뽕 막걸리 가공까지 개발한 진정한 농촌의 파수꾼입니다. 우리나라 전통주인 막걸리 산업화를 위해 기능성을 가미한 꾸지뽕 열매 막걸리를 생산하고 앞으로 음식문화에도 기능성이 가미된 제품을 생산할 포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직접 꾸지뽕 묘목생산부터 재배·생산·가공까지 연계한 농업의 6차 산업화를 지향하면서 후계인력 육성을 위해 자녀들을 사업에 직접 참여시키는 가족형 강소농입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