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내 맘대로 여행] (5) 전북 완주군 삼례문화예술촌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별 의미 없어 보일 것 같은 곳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별하게 와 닿을 수 있다.

오래 전부터 호남 최대의 역참지(공공업무 수행을 위한 교통·통신기관)이며 조선시대 삼남대로와 통영대로가 만나는 거점이었던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에 있는 삼례문화예술촌(삼삼예예미미)은 우리네 아픈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지금은 새로운 문화예술을 꽃피우는 곳이기도 하다.

유유히 흐르는 만경강 하류에 자리한 삼례는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도 온화해 만경평야를 이룬 풍요로운 삶의 공간이었다. 넉넉함 탓에 일제는 수탈의 대상으로 삼았다. 완주지역에 들어선 일본인 대지주들은 농민들의 피땀을 착취하기 시작했다.

일제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이곳에서 생산된 곡식을 일본으로 가져가고자 철로와 쌀을 보관하는 창고를 만들었다.

삼례문화예술촌 디자인 박물관 외관.

당시 늪지대였던 공간을 동네 주민들을 동원해 메우고 창고 5동을 세웠다.

서해가 만조를 이루면 바닷물은 이 양곡창고와 맞닿은 만경강 삼례 비비정마을까지 밀려들었다. 일본인들은 이때를 맞춰 양곡창고를 열고 강가에 닿은 배에 양곡을 실어 일본으로 보냈다.

이후 1970∼1980년대에 지은 창고 2동까지 더해 삼례 양곡창고의 모습은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2010년까지 창고로 사용되었으나 전라선이 복선화되어 철로와 역사가 옮겨가면서 길고 길었던 그 기능을 잃었다.

완주군은 아픈 역사를 안고 버텨온 일제강점기 양곡창고를 문화예술촌으로 새로 단장하고 문화와 역사가 공존하는 곳으로 탈바꿈시켰다.

완주군은 원형 보존에 최대한 힘썼다. 삼례문화예술촌 건축물이 일제강점기 당시 모습을 거의 보전한 배경이다.

책 공방 아트센터 내부.

이런 역사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주말에 이곳을 찾기를 권한다. 해설사가 삼례의 역사를 자세히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일부는 전시 공간으로, 일부는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상설 전시되고 있는 디자인 박물관을 지나 책 공방 북아트센터에 들어섰다. 활판인쇄에 사용하던 활자와 기계들이 전시된 책 공방 북아트센터에는 유럽의 전통적인 북아트 공방을 재현해 놓았다.

사전 신청제로 직접 가죽 다이어리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워크숍도 운영한다.

책 박물관은 내달 6일까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한국 북디자인 100년' 전시를 연다. 상설 전시관에는 송광용 작가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40년간 써온 만화 일기 131권 등의 전시물이 가득하다.

책 박물관 내부.

조선 목수의 삶의 철학이 스민 목가구를 재현하며 실제 작가의 작업 공간을 그대로 옮겨온 '김상림 목공소'에서는 오랜 시간 모아온 목공 연장 등을 이용한 전통 목가구 제작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잘 말려 다듬은 나뭇결을 따라 사람 모양으로 깎아 만든 자목상, 못 하나 박지 않고 짜맞춤으로 만들어낸 장인 정신이 깃든 가구들이 전시돼 있다.

삼례문화예술촌과 마주하고 있는 옛 삼례역도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곳은 현재 막사발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비비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목엔 봄이 움트고 있다. 봄까치꽃이 발끝에 머물고, 매화는 터질 듯 꽃봉오리를 꽉 채운 채 때를 기다리고 있다.

비비정은 삼례읍 후정리 남쪽 언덕 위의 정자이다. 조선 선조 6년(1573)에 무인 최영길이 별장으로 지었다고 전해지는 정자의 지금 모습은 옛 그대로는 아니다.

비비정 아래로는 '한내'라고 부르는 강이 유유히 흐르고 호남평야가 탁 펼쳐져 있다. '한내'는 물이 유난히 차갑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깊은 산속에서 물이 흘러 형성된 소양천과 고산천이 합류하는 지점이자, 전주천과 삼천천이 합류하여 만경강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단다.

김상림 목공소 내부.

상상이 가지 않지만 옛 어르신들에 따르면 40∼50년 전만 해도 잔풀 하나 없는 모래밭이 햇볕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고 한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예로부터 기러기가 쉬어가는 곳이라 하여 '비비낙안'이라 하였고 완산 8경 중 하나였단다.

비비정과 삼례문화예술촌 중간쯤에서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마을 사람들이 직접 기른 농산물을 이용해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는 '농가 레스토랑 비비정'을 만날 수 있다.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삼례로역 81-13(후정리 247-1) 일원.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

휴관은 1월 1일과 매주 월요일. 토·일요일에는 해설사가 상주한다. 문의 070-8915-8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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