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사교과서 국정 추진…권력의지 따른 왜곡된 지식 주입 재연 우려

박정희 정권 시기, 나는 군복무를 마치고 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 학교에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칠판 옆에 붙여놓고서 국민소득 1000달러라는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한 교육을 해야 했다. 칠판 위에는 박 대통령 사진과 함께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국기에 대한 맹세'가 걸려 있었고, 나는 평생 노동자로 살아갈 제자들에게 '노동이 천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했다.

그 당시 내가 경험한 교실 풍경은 이렇다. 미술시간이면 어김없이 북한의 남침야욕을 상징하는 마귀의 손이 남한을 움켜쥐는 모습의 포스터를 그리고 반공표어를 만들어 교실을 꾸몄다. 윤리 교과서에는 온통 가짜 김일성의 가계며 친인척을 폄훼하는 내용으로 도배질되어 있었으며, 가난에서 해방시켜준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국가가 필요한 인간을 만드는 교육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오전수업을 마치고 오후에는 가정방문을 하겠습니다. 교육청에서 공문이 내려와 이번 주 안으로 전 가정을 방문해 유신헌법에 대한 홍보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있습니다. 나가시기 전에 반드시 회람하는 공문을 숙지하시고 홍보물을 꼭 지참하시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1972년. 교사의 정체성도 교육의 방향감각도 제대로 잡지 못하던 신임교사 시절, 그러니까 교사 발령을 받은 지 3년차 되던 해였다. 그 때 교무회의에서 교무부장이 한 말이다. 아직도 초보교사 딱지를 떼지 못하던 시절,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교육청이나 교장의 지시가 법이요, 그것을 어긴다는 것은 초보교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업 단축 같은 건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교육과정도 교육청의 지시가 떨어지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런 일이 수없이 많았다. 툭하면 반공궐기대회에 학생들을 동원해야 했다.

그 오래 전의 이데올로기 교육이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 반복되고 있으니, 참 놀라운 일이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인간을 만드는 교육. 그 반동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국사교육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교학사 교과서가 채택률 영 퍼센트라는 비참한 결과가 나오자 다시 국정으로 가겠다고 교육부가 팔을 걷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국사교과서는 현대사를 별로 다루지 않는다. 고대사와 중세사 그리고 근대사에 비해 현대사는 비중이 적다. 국사교과서를 필수가 아니라 선택으로 바꾸는 등 현대사를 기피했던 이유가 뭘까? 이유는 해방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 수립 과정에서 친일세력 청산을 못한 정부는 교육에서도 그 한계를 드러냈다. 희소가치를 배분해야 할 권력이 객관적인 입장에 서지 못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면 그 결과는 심각하다.

친일세력이나 독재정권, 혹은 군사정권이 교육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거세하는 행위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이승만 정권 시대 교과서가 친일인사들의 작품으로 덧칠되거나, 유신시대 유신악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포장해 정당화한 것은 중립적이어야 할 교사들로 하여금 위법 행위를 하도록 강요한 것이다. 교사가 권력의 의지에 따라 왜곡된 지식을 주입한다는 것은 교육이 아닌 순치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역점 사업의 하나가 국사교육 강화다. 학생들이 선조들의 삶을 통해 현실을 보고 나의 소중함을 찾아가는 국사교육을 강화한다는데 누가 이의를 달 것인가? 그런데 그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국사교육을 강화한다면서 국사과목을 사회교과에서 독립시키고 수업시수를 늘리고 수학능력시험에 필수과목으로 치르게 했다.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현재 학생들이 배우는 국사교과서가 좌편향이거나 자본의 입장을 경시하고 있다며 교학사 교과서를 만들어 놓았다.

지난 2011년 검찰이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교사와 공무원들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추가 조사하는 것과 관련해 시민사회단체들이 반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식민지 근대화론을 내세우며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5·16 군사쿠데타를 '5월혁명'으로 보는 극우단체가 '뉴라이트'다. 이런 친일사관의 뉴라이트계 학자들이 만든 교과서가 교학사 교과서다. 교육부는 사실 오류와 편파 해석, 부적절한 표현, 글ㆍ사진 등 자료를 무단 전재하거나 사실을 왜곡한 내용이 무려 600여 건이나 되는 교학사 교과서를 승인하고, 문제제기를 한 교과서 집필진이 낸 '수정명령 취소 및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법원까지 나서서 기각했다.

우리나라 역사의 흐름 속에는 교육이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한 아픈 기억들이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식민지 시대에 교육은 정치이념을 전달하는 주요 역할을 했다. 그 시대의 교육은 식민지 백성을 일본 천황의 신민, 곧 황국신민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역사를, 독재 시대에는 독재정권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역사를 배워야만 했다. 이승만 정권 시대에 교육받은 사람들은 이승만을 영웅이자 독립운동가로 이해했고, 미국은 천사의 나라,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나라로 배웠다. 통일은 북진통일이 유일한 방법이고, '반미는 매국이요, 친미는 애국'이라고 배웠다.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지 않는 교육은 정권이 필요한 인간을 양성하게 된다. 정치란 '희소가치를 배분하는 행위'다. '누구나 선호하는 가치를 배분하는 일'이 정치라면 정치가 중립적이지 못할 때 교육은 정권의 아바타가 된다. 중립적이지 못한 교육을 받은 교사들은 민주시민으로 살아 갈 제자들에게 노예의식을, 노동자가 될 제자에게 자본가의 생각을 갖게 하는 역기능을 하게 된다.

2011년,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전교조 교사를 두고 '교원의 정치적 중립을 위배했다'며 정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 134명을 파면·해임키로 하고 징계를 추진하고 있다. 전교조는 이에 항의, 지금도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낸 1500명에 가까운 교사들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현재 1심에서는 전교조교사에 대해 벌금 10만 원에서 50만 원까지 벌금형을 선고받고 있다.

교원의 정치적 중립이 공적인 업무수행이 아닌 교사 개인의 정치적인 성향에 따른 권리행사인가의 여부를 사법부가 판단할 수 있을까? 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만들어 정부의 시각에 맞는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정부를 두고 교사들의 개인적 성향까지 제동을 거는 것이 민주정부가 할 일인지에 대해서는 역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닐까?

교육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일이다. 옳고 그른 일을 분별할 수 있고,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분별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 그래서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일깨워주고 더불어 행복하게 살도록 안내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다.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아는 사람, 고통을 당하는 이웃을 보면 측은지심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교육이다.

우리 헌법 제34조 ④항에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교육기본법 제6조에는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된다'고 못박고 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한 것은 권력의 힘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지 말라는 의미다. 그런데 실제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은 이를 지켜줘야 할 정부에 의해 훼손되는 경우가 많았다.

교원들의 정당 후원금을 내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위배라 하고, 시국선언을 하면 좌편향이라고 한다.

교육의 중립성은 실제로 가능한 얘기일까? '교육이 목표로 하는 인간상'의 구현은 교육이 특정한 입장에 설 때 비로소 가능하다. 군국주의 교육인가, 평화주의 교육인가? 봉건주의 교육인가, 민주주의 교육인가에 따라 교육의 방향이 달라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입장의 포기를 뜻하는 중립성이란 곧 교육의 포기다.

교육부가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겠다고 한다. 국가가 개입해 헌법에 보장된 교육의 중립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한, 교육목적이 지향하는 인간을 길러내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교육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권력의 의지로부터 교육의 중립성을 지켜내는 것은 이 시대를 사는 교육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가 아닐까?

/김용택(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http://chamstory.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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