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내 맘대로 여행] (3) 전주 전동성당과 경기전

전주에 한번 와보시게

올 때는 설레이는 가슴 꼬옥 보듬고 오시게

우리네 살았던 그 시절의 맛

예서 느껴보시게

(중략)

정히 앉아 한바탕 비벼보세

비비고 비비니 즐겁지 않은가

섞이고 섞이니 아름답지 않은가

온 몸을 휘감는 맛

세상살이 맛이 나지 않은가.

이건 격조네

아름다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격조야

-송하진 시 '전주비빔밥' 중에서

전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여행지는 전주 풍남동과 교동 일대에 자리한 한옥마을이다. 누가 뭐라 해도 이제 이곳은 주말이면 한옥마을보다 사람 구경이 먼저일 정도로 관광 명소가 됐다.

한옥마을엔 기와집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시작은 조선왕조를 개창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 즉 어진을 모시고자 태종 10년에 지어진 건물 '경기전'이다.

전주는 조선을 품었다. 바로 왕을 낳았기 때문이다.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상지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 봉인과 함께 실록을 보전하는 전주사고(全州史庫)가 설치됐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경주, 평양 등지에 봉인했던 여타의 어진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고 전주 경기전 어진만 유일하게 남아 있다. 임금이 정사를 돌볼 때 차려입은 곤룡포에 익선관을 쓴 모습이다. 얼굴과 옷 주름을 처리한 음영 기법이나 어좌와 자리의 화려한 색채, 어깨에 그린 용의 금박 효과 등에서 높은 품격이 엿보인다.

밤에 본 전동성당

경기전 안에는 느티나무와 회화나무, 대나무, 배롱나무, 매화나무 등 계절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도 볼거리다. 까치발을 하면 바깥세상이 보일 듯 말 듯한 담장 안의 경기전은 평화롭고 기품이 넘친다.

담벼락 너머로 웅장한 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꼽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한 전동성당. 호남지역의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성당이 세워진 자리는 원래 전라감영이 있던 곳으로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박신양과 최진실 주연의 영화 <약속>에서 남녀 주인공이 결혼식을 올린 텅 빈 성당으로도 유명한데 건물 자체가 주는 경건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전동성당은 낮과 밤의 모습이 사뭇 다르다. 밤을 기다려 온기를 품은 듯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어둠 속의 전동성당을 꼭 감상하길 바란다.

이제 본격적으로 한옥마을을 느릿느릿 걷는다. 국제 슬로시티 전주 한옥마을은 예쁜 가게와 이색적인 맛집, 전통공예 등 다양한 볼거리·먹을거리로 지루할 틈이 없다.

전주공예품전시관 맞은편에서 방향을 틀었다. 나무계단 안내를 받아 10여 분 오르면 이성계가 고려말 우왕 6년 남원 황산에서 왜적을 무찌르고 돌아가던 중 잠시 머물렀다는 오목대에 도착한다.

오목대에서 바라본 한옥 마을

다닥다닥 처마를 맞댄 한옥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월이 멈춘 듯 정적이 흐른다. 석양이 지고 처마 밑으로 하나 둘 불빛이 켜진다. 어딘가에선 저녁밥을 짓는지 스멀스멀 연기가 올라온다.

정중동의 세상이 펼쳐진다.

한옥마을에 들어올 때부터 궁금했던 것은 바로 전주비빔밥. 평양냉면, 개성탕반 등과 함께 유명한 조선 음식으로 꼽힌 그 맛이 궁금하다.

선택의 폭이 넓은 만큼 신중해야 한다. 30년 전통의 종로회관(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 60-1, 063-288-4578)으로 낙점했다.

뜨겁게 달궈진 놋쇠 그릇에 담긴 비빔밥은 기존에 보던 비빔밥과 품격을 달리한다. 선홍빛 육회와 치자로 곱게 물들인 황포묵과 싱싱한 채소들, 그 위에 곱게 뿌려진 잣까지 그 조화가 먹기 아까울 정도다. 오롯한 고추장의 맛이라고 표현하기 아까운 재료들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담백한 장맛이 인상적이다.

육회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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