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LP 수집하는 피자가게 사장님 최광열 씨

"LP판을 가져오시면 피자를 드립니다."

창원시 진해구 풍호동에 있는 중앙시장 인근 이코노 피자집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빈티지 카페를 연상시키는 내부 구조와 수많은 LP가 꽂혀 있는 서랍장. 이코노 피자집은 과거로 떠날 수 있는 추억의 열차다.

이코노 피자집을 운영하고 있는 최광열(65) 씨는 과거 음악다방을 운영했기에 클래식부터 재즈, 팝, 록 등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음악에 관해서는 방대한 지식을 지녔다.

"듣고 싶은 노래 있어요?"

손님이 가게에 들어서면 최광열 씨는 주문보다 음악을 먼저 권한다. 그에게 음악은 인생의 전부다.

"17살 때 라디오를 통해 비틀스 노래를 들었는데 자꾸 머리에서 맴돌더군요."

처음 들은 팝 음악에 빠져 라디오를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라디오에서 그 노래를 다시 듣기는 너무 어려웠다. 누군가가 라디오에 사연과 함께 신청곡으로 비틀스 노래를 적어 주지 않으면 다시는 들을 수 없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자 라디오를 끼고 살던 그는 결국 LP를 사기로 마음먹고 LP 복사본을 처음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약 50년에 걸쳐 그가 모은 LP는 어느덧 1만 여장에 이른다.

이코노 피자를 운영하는 최광열 씨가 손님의 생일을 맞아 이종용 LP를 찾고 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조니 호튼의 'All for the Love of a girl'이에요. 어느 소녀에게 바친 사랑이라는 제목인데 멜로디와 보컬의 목소리에 완전히 매료됐죠."

비틀스를 그리워하던 그는 하나 둘 LP를 모으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음악다방'을 접했다.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저는 LP를 제 방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음악다방에서는 큰 소리로 웅장하게 LP를 틀어주는 거예요. 데이트를 하던 도중에도 그 낯섦에 대해 설레었던 것 같아요."

두 번째 문화적 충격을 받은 그는 곧장 음악다방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1979년 당시 부산 구덕야구장 인근에 '갈채'라는 이름을 내걸고 영업을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잘됐다. 동아대가 하단으로 옮기기 전까지 최고의 음악다방으로 그 주변을 휘어잡았다.

"음악다방으로 한 번의 성공을 맛봤기에 시내로 다방을 옮겼어요. 하지만 무리하게 확장을 하다 보니 결국 큰 빚을 지게 되면서 가게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어요. LP만 챙기고 나머지는 다 팔아버렸죠. 정말 속상했어요."

부산에서 실패한 뒤 최 씨는 진해로 와 '사관과 신사'라는 이름으로 음악다방을 열었다. 인근에는 육군대학이 있어 장사도 잘됐다.

1982년 모처럼 부산에 갔다 지인과 함께 처음으로 피자를 먹었는데 지인이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식이 될 것 같다는 말을 해 그 길로 프랜차이즈를 내려고 발품을 팔았다.

하지만 당시 프랜차이즈는 직영점은 영업하지만 체인점은 내주지 않았다.

"지금이야 체인점이 많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도 없었어요. 몇 년간 체인점을 알아보다 포기하려는 순간 업체 한 곳과 계약을 맺게 됐어요. 하지만 제가 계약을 맺은 곳은 피자집이 아니라 햄버거 가게였어요. 뭐 그래도 순탄하게 가게를 일궜는데 당시 가게를 추천해 준 지인이 미안하다며 정식으로 피자집을 오픈하자는 제안을 했죠. 그렇게 탄생한 피자집이 이코노 피자입니다."

이코노 피자는 부산에 3군데, 양산에 한 곳, 진해에 한 곳을 열었다. 승승장구하던 그때 진해점을 제외한 나머지 이코노 피자에도 IMF외환위기의 역풍이 불었다.

"다른 곳은 장사가 잘되니 안심하다 망해버렸죠. 반면 저희는 자체적으로 소스도 개발했고, 도우에도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신 메뉴 개발에 성공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었죠."

최 씨는 그러면서 또 다른 변화를 꾀했다. 피자집과 음악다방을 조합해 새로운 콘셉트의 피자집으로 재탄생시켰다. LP와 턴테이블, 스피커들이 가게에 들어서면서 이코노 피자는 음악과 사랑, 추억이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소문이 나자 서울을 비롯한 각 지역에서 추억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늘었다.

"서울에서 나이가 많이 든 분들도 몇 분 왔어요. 오셔서 LP판도 주고 간 분들도 있고, 몇 번 더 찾아오신 분들도 있죠. 부탁을 하시면 LP에 있는 노래를 CD로 만들어준 일도 있죠. 많이들 좋아하시더라고요."

최 씨는 말한다.

"각박한 세상에서 잊고 살았던 낭만적인 추억을 되살려 줄 수 있는 것은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젊은이들은 공감 못 할 수도 있지만 피자집에서 LP만의 매력을 한 번 느껴보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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