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도 중반을 넘어섰다. 일기 쓰기를 비롯해 평소보다 좀 더 신경 써서 아이들 방학 과제물을 챙겨주어야 할 때다.
요즘은 방학 숙제도 아이들이 스스로 정해서 한다. 이런저런 보기를 학교에서 내어 주면 그 가운데 하나를 고르든지 아니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새롭게 찾아내어 하면 된다.
하루는 아이가 읽을 책을 사달라고 했다. 아이가 보여주는 학교 안내장에는 ‘교과관련 권장 도서’라는 제목 아래 책이름이 몇 개 적혀 있었다.
아랫집 친구는 다 샀다면서 자기도 다 사 달라고 졸랐다. 지난 여름방학 때 안내된 책을 다 읽어보고 숙제로 독후감을 써 간 친구들은 상도 받고 칭찬도 들었다는 것이다.
아이들 손에 이끌려 찾은 동네 책방에는 학교 안내장에 적힌 책들이 모두 있었다. 책표지에는 하나같이 무슨 연구회나 협회에서 주는 좋은 도서상을 받았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황금빛 리본 모양으로 돋을새김을 해서 내놓은 것도 있었다.
아이는 안내장에 적혀 있다보니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인 줄 알고 다 사자고 졸라댔지만, 나중에 필요하면 더 사자며 아이를 달래 일단 두 권만 집었다.
저녁에 잠자리에서 아이에게 읽어주다 보니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줄거리는 죽 흘러가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아이들 수준에 맞게 낱말을 제대로 골라 쓰지 않아 아이들 읽으라고 쓴 책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다시 책을 꼼꼼히 살펴보니 무슨 단체가 주는 상을 받은 책이기는 한데 왜 어떤 까닭으로 상을 받았는지는 나와 있지 않아 알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학교 안내장을 찾아보았다. 책이름만 나란히 적혀 있을 뿐 어떤 내용이 좋은지, 어떤 부분이 교과와 관련이 있는지는 전혀 ‘안내’하고 있지 않았다.
밤이 늦었지만 평소 알고 지내는 학부모한테 전화를 해 보았다. 그랬더니 아이가 하도 졸라 다 사기는 했지만 자기도 내용은 별로 신통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 읽고 써 온 아이들은 상을 주어 부러움을 사도록 하고 해서, 책 팔아먹으려는 서점이나 도매업자에게 선생님이 농락 당한 것 아니겠느냐”하고 덧붙였다.
과연 그럴까. 선생님 인격을 믿는다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권장’해준 책이 내용이 너무 부실했고 ‘권장’하는 까닭도 바로 알려주지 않은 탓에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전미영.가명.36.김해시 봉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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