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안현수 얘기다. 그럴 만하다. 워낙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주인공 아닌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가 토리노올림픽에서 금메달 세 개와 동메달 한 개를 따내며 세계적인 스타로 우뚝 선 바로 그 순간부터 부상과 소속팀 해체 그리고 러시아로 귀화와 소치올림픽에서의 화려한 재기까지를 담아낸 영화가 꼭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의 이야기는 드라마틱하다. 당사자인 우리와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 모두에게 통할 수 있는 보편적 스토리 라인을 가졌으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만 되살려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다.

경기에서 보여준 그의 기량은 실로 엄청났다. 8년 전 이미 확인한 바 있지만 군계일학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오랜 공백과 국적 변경이라는 걸림돌을 모두 극복하고 이룬 것이니 그에게 박수를 아끼고픈 생각은 전혀 없다. 마땅히 그래야 하며, 그건 꼭 안현수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을 뒤덮은 안현수 신드롬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잘한 것은 잘한 것이며, 한때나마 그는 우리 모두를 기쁘게 해줬던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안현수를 향한 그런 축하와 환호와는 별개로 이번 열풍은 불편하다. 몹시 불편하다. 우선 간단한 질문을 던져보자. 왜 지금인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그가 빙상연맹의 파벌과 연고주의로 인해 대표팀에서 탈락했다고 알려진 건 아주 오래전이다. 그리고 러시아인으로 귀화를 택한 것도 이미 수 년 전의 일이다. 모두가 쉬쉬해서 몰랐던 것도 아니다. 언론에서 수없이 보도했던 사실이고 소치에서 그가 보여준 눈부신 역주 직전까지도 수많은 매체가 재확인했었다. 근데 왜 그땐 잠잠하다가 이제야 다들 (역시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가 받았다고 하는 부당한 처우와 차별에 그렇게들 분노하는 것일까?

또 다른 질문. 만일 그가 이번 올림픽에서 이토록 눈부신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해도 이랬을까? 그가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거나 동메달 하나에 그쳤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지금 같은 저주와 증오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을까? 내친 김에 하나 더. 알다시피 이번 우리 대표팀은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았다. 애초에 금맥이라고 하던 쇼트트랙이었다. 그렇다면 안현수의 성적과 관계없이 우리 선수들이 아주 좋은 성과를 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한국 체육계의 고질병이라는 파벌과 연고 그리고 엘리트 중심주의에 이토록 많은 이들이 분기탱천했을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이번 사태가 철저히 한국 대표팀의 성적과 연동되어 있다고 보는 이유다. 우리의 성적이 좋았다면 모든 게 좋았을 건데 우리에게 영광을 안겨줬어야 마땅한 안현수가 '빅토르 안'이 되어 러시아에 전례 없는 기쁨을 안겨주니 화가 났던 건 아닐까? 이 물음에 아니라고 할 수 있으려면 위에서 가장 먼저 던진 질문, 즉 '왜 그때는 아니었는데 지금 와서' 하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우린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알리바이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체육계에 만연한 파벌주의의 청산 못잖게 우리 마음속 저 깊은 곳에 숨기고 있는 성적지상주의와 승자독식주의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 동반돼야 하지 않을까? 이 모든 게 우리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부덕의 '소치'라고 말이다.

/김갑수(한국사회여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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