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인 줄만 알았다. 층간 소음….

아파트에 산 지 15년째이건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 당황스럽기만 하다.

시초는 이랬다.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동생이 조카 둘을 데리고 집에 놀러 온 지 1시간 남짓 지났을까. 아랫집에서 올라와 조용히 해달라고 한다.

면식도 없던 이웃사촌 간에 이런 일로 서로 인사하게 된 것을 미안해하며, 오늘은 꼬마 손님이 와서 그런 거니 이해해 달라며 웃는 낯으로 이야기했더니 평소에도 많이 쿵쿵거린다며 주의를 부탁한다.

평소래야 나이 70인 왜소한 엄마와 다 큰 아이 둘, 그리고 나밖에 없는 단출한 식구에 손님이 잦은 집도 아니라 약간 의아스러웠지만 주의하겠다고 말하고는 넘어갔다.

그 뒤에도 종종 경비실을 통해 또는 직접 찾아와서 우리 집 소음에 대해 항의를 했다. 대부분 저녁도 되기 전의 이른 시간이라 적잖이 마음 상했지만 그래도 이웃끼리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며 빵이며 과일을 사 가지고 가곤 했다.

그러다가 설날에 제대로 일이 터졌다. 그동안 아래층의 항의에 항상 우리 아이들을 주의시키던 엄마가 아래층 아저씨와 대판 싸우게 된 것이다. 친척들과 점심을 먹은 뒤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래층 아저씨가 벨을 누르며 찾아와 항의를 했다.

속은 상했지만 평소처럼 좋게 돌려보내려는 나를 밀쳐내고는 엄마가 뛰어나왔다. 그러고는 "정월 초하루부터 남의 집에 찾아와 무슨 짓이야!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는데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화를 내시는 게 아닌가? 난생처음으로 남들과 큰소리로 싸우는 엄마를 봤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동안 애들이 걸을 때마다 '뒤꿈치!'라며 짜증스럽게 외쳐대고 소음방지용 슬리퍼에 카펫까지 깔고도 아랫집 때문에 노심초사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나는 마음속으로 '엄마, 이겨라!'를 외쳤다. 나야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지만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엄마로서는 우리 아이들이 걸을 때마다 잔소리를 해대고, 그나마 가끔씩 손주들이 놀러 오는 것도 막으며 아랫집 눈치를 봤으니 그 심사가 오죽 상했을까?

그날 이후 지금까지는 조용하다. 우리 집의 생활 유형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아이들이 까치발로 다니지도 않지만 시종일관 갑이었던 아래층은 더이상 전화도, 찾아오지도 않는다.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결국은 큰소리가 난 뒤에야 조용해졌으니 말이다.

나에겐 청력의 변화가 생겼다. 아래층 소음이 정당한가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위층 소음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그러면서 그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생활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신경 쓰지 않고 지낼 때는 몰랐는데, 의식을 하기 시작하니 꽤나 다양한 소음이 들려왔고 때로는 신경에 거슬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랴? 공동주택에 살면서 감수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많은 가구가 닥지닥지 붙어서 살아야 하는 아파트에서 가정마다 각기 다른 생활 주기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오후 9시 이후에는 세탁기나 청소기를 돌리지 않는다든가,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이 콩콩거리지 않게 한다든가 하는 기본적인 질서만 지킨다면 층간 소음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를 해주는 게 공동주택에서 생존 전략이자 서로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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