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냉이

작곡가 박태현 선생의 대표작 가운데 '봄맞이 가자'란 동요가 있다. "동무들아 오너라/ 달맞이 가자"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너도 나도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 캐오자" 이렇게 이어진다.

1930년대 지어진 이 동요에 나오는 달래·냉이·씀바귀는 그 당시에도 대표적인 봄나물이었던 모양이다.

그 중에서도 냉이는 늦가을부터 봄까지 우리의 사랑을 받는 나물풀이다. 냉이를 봄에만 먹는 줄 알지만 봄 냉이만큼 가을 냉이 맛도 좋다. 그렇지만 특히 냉이는 가을에 추수하여 거둔 먹을거리가 떨어져갈 봄, 남은 조금의 곡물과 함께 죽을 쑤어 먹을 수 있는 귀중한 구황식량이었다. 또 겨울을 난 냉이뿌리는 인삼보다 좋다고 할 정도로 이른 봄에 먹는 냉이에는 비타민이 많아 춘곤증을 몰아내는 데 좋다.

냉이의 이름이 지역마다 나시, 나이, 나싱이, 나생이, 나싱구, 나싱개, 나승개 등 다양한 것도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과 배고픈 봄을 함께하여 친숙해진 까닭일 것이다.

냉이.

냉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에 두루 자라며 원래 유럽에서 자라던 것이 농경활동에 따라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왔다고 한다. 두해살이 잡초인 냉이는 보리나 밀과 생활 주기가 비슷하여 늦가을에 싹을 틔워 로제트로 땅에 착 달라붙어 겨울을 지낸다.

로제트(Rosette)란 풀들이 겨울을 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두해살이나 여러해살이풀 중 겨울을 넘길 때 최대한 햇빛을 많이 받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피하기 위해 잎을 활짝 벌려 땅에 붙이고 있는데 그 모양이 장미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냉이는 봄이 되면 빠르게 성장하여 3월부터 꽃을 피우고 4월이면 씨앗이 영글어 떨어진다. 4~5월에 하얀 십자꽃이 피는데, 총상꽃차례(總狀花序)를 이룬다.

꽃받침은 4개로 긴 타원형이고 꽃잎은 거꾸로 선 달걀 모양이며 6개의 수술 중 4개가 길며, 1개의 암술이 있다. 그러나 4월 중순 이후에 자라는 냉이는 고유의 향기를 잃어 식용으로서 가치가 없어진다.

그래서 일본어로 냉이를 '나즈나(なずな)'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냉이가 여름에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풀이 된다고 '나쓰나(夏無 なつな)'라고 하다가 나즈나(なずな)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는 풀이도 있다.

겨울은 아직 물러갈 의사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봄을 향해 가고 있어 곧 가지마다 눈길 돌리는 곳마다 돋아나는 새싹과 꽃들이 생명의 시작을 알릴 것이다.

3월이 되면 소쿠리를 들고 들판으로 나가 냉이와 봄나물을 캐며 온 몸으로 봄맞이를 해보자. 그리고 고개 숙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꽃, 허리를 굽혀야 눈 마주칠 수 있는 작은 풀에도 관심과 사랑의 시선을 가져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김철록(밀성초등학교 교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