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45년 해방 이후 마산에서 설립되어 운영되었던 사회복지 시설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 쓴 것이다.

특히 1950~1960년대의 마산에는 백양원, 애리원, 인애원, 신생원, 동명원, 영신원, 애육원 등이 있었고, 창신고 부근에도 유사한 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대략 8곳이다. 2012년 12월에는 마산 창원 지역에 동보원, 애육원, 인애원, 애리원, 영신원 등 5곳이 운영되고 있었다.

다른 도시지역과 비교해 볼 때 마산의 고아원이 많았던 것 같다. 인구 10만 명 정도의 도시에 8개라면, 1만 2000~1만 3000명에 하나 꼴이지 않는가. 도시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그 중 하나인 인애원 이야기이다.

지금 막 철거되고 있는 장군동 아케이드 옆에 인애원이라는 고아원이 있었다. 위치는 완월천 하류에 있는 장군다리에서 오른쪽 맞은편 블록에 있다. 약간 들어간 길목이지만, 오른쪽에 난 진주가도 쪽으로 한 채 정도의 거리를 지나면, 그 원형의 일부를 볼 수 있다. 오리고기집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고아원의 설립자는 조수옥 씨로서, 연도는 1945년 말이다. 배출인원은 1700여 명으로 1991년에 장군동 시대를 마감하고 팔룡동으로 이전하였다. 2002년에는 72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당시 조 원장이 제1회 유관순 상을 수상할 때에 신문에서 밝힌 이야기다.

이 고아원에 대해서는 또 다른 기사가 있다. <매일경제> 2005년 7월 30일 자에 '고아들의 대모 주경순 마산애리원 원장 28일 별세'가 그것이다. 거창 출신, 82세로 별세. 독신, 재산 사회환원, 시신 병원 기증. 1946년에 마산인애원 설립, 60년간 복지사업 등등이 주요 개념어이다.

그는 1945년에 일본의 교토산파학교를 졸업한 뒤 귀국하여 마산시 장군동에 조산소를 차렸으며, 해방 직후 거리에 넘치는 고아들을 위해 조수옥 원장과 함께 마산인애원을 설립하여 부원장으로 재직하였다.

그의 부친은 일제 때 거창에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한 주남선 목사이다. 주 원장은 35살인 1958년에 애리원을 설립(위의 기사와 불일치)하였으나, 정부의 지원은 없었기 때문에 조산소를 운영하여 나온 수익금 전액을 투자하였고 채소장사도 하면서 자금을 조달하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2500여 명의 불우아동을 키워 사회에 내보냈으며, 640명은 부모 품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1억여 원의 복지시설과 용지를 법인에 기증하였고, 시신은 부산고신의료원에 기증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8월 1일에 마산중부교회에서 8월 1일에 발인한다는 공고가 나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교회와 연고가 있는 듯이 보인다.

/옥가실(마산에서 띄우는 동아시아 역사 통신·http://blog.naver.com/yufe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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