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포늪에 오시면] (86) 겨울에 보내는 우포 편지

봄날 같은 날씨가 계속되다가 갑자기 이곳 우포에도 강추위가 몰아쳤습니다. 강원도와 경북 일부 지역에는 폭설이 내려 지붕이 무너지는 등 피해가 막심하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우리 인간이 지구에서 최고라는 자만으로 살다가, 이런 날씨에서 쩔쩔매는 자신을 보면서 인간이 지구의 작은 생물 중 하나임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포에는 방문객 출입이 전면 통제되고, 우포늪관리사업소 등에 소속된 직원들은 조류인플루엔자 피해를 줄이고자 밤늦게까지 단속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근무지가 생태관에서 바깥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통제를 하는 맞은편 밭에는 양파 모종, 배추, 무 등이 심겨 있습니다. 그곳에서 아주 흥미로운 모습의 배추를 보았습니다. 중간이 움푹 들어가 있는데 사람이 일부러 안에만 먹지는 않은 것 같아 갸우뚱거리고 있는데, 마침 옆에서 심고 남은 양파모종을 다듬던 할머니께서 고라니가 먹었다면서 "아휴 여기저기 남은 배추가 없네. 하긴 이 추운 겨울에 먹을 게 뭐가 있겠노" 하시며 고라니 걱정 반 주인 걱정 반을 하셨습니다.

그 배추를 보니 지난가을 우포늪 인근 산의 매화나무 가지에 걸린 장지뱀이 생각났습니다. 매실은 둥근형태지만 매화나무의 가지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선지 아주 뾰족합니다. 사람이나 다른 동물들로부터 매실을 보호하기 위해서인 모양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장지뱀이 그 가지에 걸려 죽어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때까치의 먹이행동이었습니다. 때까치는 18cm 정도 되는 작으면서도 귀여운 새입니다. 그렇게 작지만 맹금류로서 장지뱀을 먹이로 잡아다 뾰족한 곳에 말려 두었던 것이었습니다.

철조망에 걸려 있는 때까치 먹이.

◇내가 자연이 되는 새집 만들기와 먹이주기

강원도 인제에서 산새를 위해 활동하시는 도연스님은 1년에 겨울이 여러 달 되는 인제보다 따뜻하고 생태계가 잘 보존된 우포늪으로 오시고자 합니다. 스님은 산새들과의 즐거운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는 책을 내신 분이죠. 스님과 인연을 맺은 다양한 산새들의 사진과 그림들이 있는 그 책에서 스님은 "산새들로부터 겸허함을 배웁니다. 새들은 소중한 도반이며 부처입니다"라 합니다. 그 책에서 산새들을 위해 먹이를 주고 집을 지으면서 인연을 맺어가는 모습을 만나실 수 있죠. 스님은 산새와 친해지는 방법 가운데 첫째는 먹이 주기이고 둘째가 집 지어주기라 합니다. 산새가 날아와 먹이를 손바닥에 들고 있는 어린이와 눈을 마주치면서 그 먹이를 먹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사랑스런 아들과 딸들에게 산새가 다가와 손바닥 위의 먹이를 먹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습니까?

꼭 숲이 울창한 산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은 아니랍니다.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해바라기씨와 볶은 땅콩은 새들이 즐기는 메뉴고, 값은 비싸지만 잣이나 들깨를 주면 사귀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합니다. 먹이통은 사도 좋지만 500㎖ 정도 되는 우유팩을 써도 좋습니다. 볶은 땅콩을 거칠게 부수어 넣고 어른 키 높이 정도 나뭇가지에 먹이통을 걸어두면 된답니다. 페트병을 활용할 수도 있는데, 아래 양쪽에 구멍을 내고 바로 옆에 다시 구멍을 뚫어 나무젓가락을 끼워 넣으면 새들이 나무젓가락에 앉아 구멍으로 먹이를 빼먹을 수도 있답니다. 직박구리는 도심이나 공원에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야생조류 1호라 불리는데 까치·까마귀처럼 잡식성이어서 사람이 먹는 것은 짜거나 맵지만 않으면 과일·견과류·빵 등 다 먹는다고 합니다.

새와 친해지는 것은 자연이 우리 몸으로 들어오는 즐거운 경험이 아닐까요? 내 주변에 볼 것이 없다고만 여기지 마시고 아이들과 함께 어떠한 새들이 사는가도 보시고 그들을 위해 새집도 지어주고 먹이도 주면, 마음은 부자가 되고 아이들은 부모를 새롭게 보게 되는 흐뭇한 체험이 되지 않을까요?

우포늪을 보고 싶어서 서울을 출발해 부곡온천에서 숙박한 뒤 아침 일찍 들른 가족을 만났습니다. 조류인플루엔자로 못 가게 됐다고 하니 매우 아쉬워했습니다. 그래서 국민동요로 알려진 '산토끼'노래를 기념하여 세워진 '동요 산토끼동산'으로 가시라 권하니 "산토끼 노래가 여기서?"라며 신기해하고 좋아했습니다. 아울러 들머리에 있는 엘라곤충화석박물관도 추천했습니다. 곤충은 어린이들이 좋아하잖아요. 작은 박물관이라 뭐가 있겠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들어가보면 5000점의 곤충들과 600여 점의 화석에 놀라고 25년 모아온 관장의 정성에 또 놀랍니다. 며칠 전 그곳에서 본 때까치 먹이는 철조망에 걸려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장지뱀을 보노라니 불쌍하기도 하고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요즘 '100세 시대'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은퇴 후 몇 십 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인생2막을 사는 방법에 대해 사례를 들어가며 조언을 해주는 신문 기사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종종 보게 됩니다. 엘라곤충화석박물관 김왈수 관장은 취미로 곤충과 화석을 모으고 준비하여 우포늪에 왔습니다. 대구의 한 대학 교수는 도자기가 전공입니다. 현재 대구 근교에서 도자기 관련 체험관을 하고 있는데 1~2년 내 교수를 그만두면 우포늪에서 도자기 박물관을 열고자 합니다. 크든작든 자신만의 볼거리와 체험거리로 우포늪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거죠.

고라니가 먹은 배추.

◇나무와 풀들에게 웃음을

삭막해 보이는 겨울 산이지만 보이지 않는 땅 속에서는 활동이 활발합니다. 숲에 가면 많이 떨어져 있는 잎들 속에서 민달팽이, 달팽이, 진드기, 파리 유충과 딱정벌레가 잎들을 먹습니다.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조그만 균류와 단세포동물 그리고 박테리아 등이 잎을 잘게 쪼개어 먹고 분해시켜 양분을 방출하는데 숲의 흙 1g에 40억 마리 정도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 잘 안 보는 곳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네요. 앞으로는 겨울 숲을 보실 적에 "아무 것도 없네"라 하지 말고 최소한 "안 보이네"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면 알수록 바람도 햇살도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는 존재가 아님을 느낍니다. 알면 알수록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는 흥미로운 요술쟁이 같습니다. 우리 자신도 무한한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면서, 잎을 떨군 나무와 풀에게 싱긋 웃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요? 당신이 보낸 그 기운으로 더 연한 새싹과 푸른 잎들로 인사할 것 같네요.

/글·사진 노용호(창녕군 우포늪관리사업소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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