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보름 후면 널 만날 생각에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요즘, 오늘은 특히나 하얀 눈이 마치 얼마 후의 네 탄생을 축하하는 폭죽 가루처럼 펄펄 흩날리는구나.

세상의 근원 같은 그 순백의 눈꽃송이들을 보고 있자니 너의 존재를 처음 확인했던 어느 늦봄 저녁의 얼떨떨한 한 부부가 떠올라. 이게 현실인가 꿈인가 서로의 눈을 확인하곤 하던 우리들 말이지.

처음으로 찍었던 초음파 사진 속, 마치 세상의 겨자씨처럼 까만 바다에서 쪼끄만 몸으로 마구 헤엄치던 '뽀뽀'. 네 태명을 짓고서 너를 만나볼 기쁨과 어색함에 우리 엄마 아빠는 열 달 동안 그 하루하루를 얼마나 조심스러운 희망 속에서 기다려왔는지 모른단다.

글쎄, 우리가 너의 엄마 아빠라고? 너를 잉태하고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엄마, 아빠라는 대단한 이름을 얻어도 되는 것인지 한편으로는 어색하고 또 부끄럽기가 그지없구나. 왜냐하면 너와 아홉 달여를 함께 지내는 동안 난 네가 내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 적이 단 한번도 없었거든. 어쩌면 우연히 네가 나를 선택해 지금까지 스스로 용케 살아낸 느낌이 들었을 뿐이야.

물론 임신부는 고독하다 할 정도로 힘들어. 그래서 임신했을 때 받은 마음의 상처가 평생 간다는 말이 있나 봐. 그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임신부와 아기만의 외롭고 고독한 경주이기 때문일 거야. 사실 나도 열 달 동안 정도 차이일 뿐 한번도 몸과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거든.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의 순간이었을 뿐이야. 그러니까 너 스스로 자생적이고도 자발적인 생명력으로 1년여라는 긴 시간들을 버텨내고 또 살아낸 거야.

그건 겸손이 아니라, 임신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해낸 최근의 내가 믿는 어떤 진실 같은 것이란다. 특히나 물결치듯 시작되었던 미세한 태동에서부터 감당할 수 없는 지금의 발길질의 요동에 이르기까지 내 또 하나의 심장인 뽀뽀, 난 널 감히 우러러 모시지 않을 수 없었단다.

뽈록뽈록, 퍼덕퍼덕, 한 마리 물고기 같은 네가 한번씩 꼬리를 칠 때마다 그 느낌이 내 몸으로 완연히 전이되는데, 그 짧은 순간만큼은 너에게 온통 끌려 집중하게 되고 또 마치 내가 네가 되는 묘한 체험이더구나. 어떻게 몸의 주인과 몸속 생명이 구별될 수 있겠어. 네 아빠는 그걸 되게 부러워하고 신기해하더구나.

네가 잘못될까 봐 걱정이 됐던 날들은 그렇게 네가 생명의 중간과 끝을 스스로 선택하고 또 살아낼 것이란 각오로 마음을 다잡았단다. 분명 그 감각은 내 새끼이기 때문이라는 모성애의 보편적인 감정만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었지. 말하자면, 생명 자체에 대한 경외감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머리와 가슴으로 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몸의 감각.

   

그렇게 나는 너와 앞으로도 엄마와 아들의 관계가 아닌 한 생명과 생명의 관계로 평생 살아가고 싶어. 날 선택해 줘서 고마운 뽀뽀, 이 엄마를 부탁해.

/서은주(양산범어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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