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바쁘다는 핑계로, 볼 게 없다는 이유로 TV를 거의 안 보게 된다. 누군가 적극 추천하거나 화제의 중심에 선 프로그램이 있으면 다시보기 서비스로 챙겨보는 정도다. 그럼에도 집안에서 가끔 누군가 TV를 켜 놓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가고, 결국 끝까지 챙겨보게 되는 프로그램이 있다. KBS <콘서트 7080>이 그 중 하나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의식적으로 피한 적도 있었다. 부끄럽지만 아직 반세기도 못 산 주제에 나이 먹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였다. <가요무대>가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음에도 그랬으니 참으로 유치한 이유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7080'을 만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노래와 재회했다. 자막으로 나오는 가사 덕분이었다. 평소 방송사가 남발하는 자막이 시청자들의 주체성을 빼앗음과 동시에 제작자의 의도에 고스란히 놀아나게 한다는 매우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노랫말은 달랐다. 특히 '홑이불처럼 사각거리며 가슴 저미는 그리움이 쌓이고'(박정수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란 대목에서 그랬다. 그건 마치 아주 먼 옛날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를 처음 읽었을 때 못지않은 경이로움이었다.

바다 건너 사람들은 대중음악을 팝 뮤직(Pop Music)이라고 한다. '팝(Pop)'은 '파퓰러(Popular)', 즉 '대중적인'이란 뜻을 가진 형용사일 뿐 그 안에 '세월'은 없다. 근데 우린 그런 음악을 유행가라고 하며, '특정한 시기에 대중의 인기를 얻어 많은 사람이 듣고 부르는 노래'라고 정의한다. 핵심은 '특정한 시기'다. 몇 달만 지나도 한물간 노래, 흘러간 노래가 됐다. 음원 차트 정상에서 1주일은커녕 3일을 버티는 노래가 없었다. 다른 생필품들처럼 노래는 그냥 써서 없애는 것일 뿐 기억하며 곱씹는 대상이 아니었다.

지난 1월 22일 김광석 출생 50주년을 맞아 그의 고향 부근인 대구시 중구 대봉동 '김광석 길'에서 추모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근데 어느 날 그 시절 노래들이 돌아왔다. 이미 흘러가 버린 '유행'가가 말이다. '나는 가수다'를 시작으로 <불후의 명곡> 그리고 최근 인기인 <히든 싱어>는 모두 그 시절 노래들에 기반하고 있다.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인 건 <응답하라 1994>였다. 그리고 마침내 김광석이 불려 나왔다. 20, 30대들이 대거 동참했다는 게 예전과 달랐다. 언론은 그걸 '김광석 열풍'이라 불렀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사가 얻은 보편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요즘 젊은이들 또한 김광석을 처음 만났던 다른 그들처럼 영원히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님을 공감하게 된 것이고, 때론 '검은 밤의 한 가운데 서있어 한 치 앞도 보이질 않'는 어둠에 힘겨워 하다가도 '봄의 새싹들처럼 일어나 다시 한 번 해 보는 거'라며 두 주먹 불끈 쥐게 된 것이다.

그렇다. 김광석이 아무리 절창이라지만 노랫말이 없었다면 그도 없을 터. 이 대목에서 또 쓸데없는 오지랖이 발동한다. 한 20년쯤 지나 누군가 '응답하라 2014'를 외친다면 과연 어떤 노래들이 불려 나올까? 뜻 모를 의성어만 반복하다 끝나버리는 요즘 노래들이 앞만 보고 달려가다 잠시 뒤돌아보며 짠한 추억에 젖게 될 그들을 달래줄 수 있을까?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다며,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 한다며 '하이에나가 아닌 표범'의 삶을 택한 노래들을 기다려 본다. 암만 찾아 봐도 흥얼거릴 요즘 노래 한 곡 찾지 못한 꼰대의 오버라고 해도 할 수 없다.

/김갑수(한국사회여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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