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창원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한겨레21 특별판 300부를 시민들에게 나눠드렸다. 고향으로 가는 바쁜 걸음을 다소 방해하기도 했지만, 많은 분들에게 알려나갈 수 있었다. 특별판을 받는 반응도 정말 가지각색이었다.

연세 많은 할아버지는 책 내용을 살피지 않고 겉표지만 보시고는 "내가 박근혜 대통령을 엄청 좋아하는데, 사진 잘 나왔네!"라고 기뻐하셨다.

어눌해 보이는 한 청년은 "저 불교인데요?"라며 한겨레에서 나온 특별판이라 설명을 해도 종교 신문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다른 한 분은 "박근혜, 내 사촌이다. 진짜다!"라며 한동안 내 곁에서 가문의 역사를 얘기해주셨다.

앞으로 남은 임기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하시는 아저씨가 있는가 하면 정말 잘하고 있다! 든든하다고 말하시는 분도 있었다. 받자마자 그대로 쓰레기통에 넣어버리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뚫어져라 꼼꼼히 읽고 좋은 내용이라고 힘내라는 말을 전해주시는 분도 있었다.

한겨레21 설 특별판

2시간 가까운 시간을 많은 시민들을 접하면서 새삼스레 정말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구나 느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엄마와 함께 온 여학생이었는데, "아저씨, 그런데 이거 읽는다고 세상이 바뀌나요?"라고 한 마디 툭 던졌다. "저도 뉴스 열심히 보는데 파업하고 촛불 들고 해도 바뀌지 않는 거 같아서 말해드리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어린 친구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듣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그 친구의 말이 맞다.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보지도 않고 물러설 수는 없지 않는가.

<아크라문서>에서 패배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패배는, 두렵지만 열정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소한 지금 정부와 싸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승패를 떠나 '실패'를 선택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라. 그러면 실망도 없을 것이다.'가 실패의 표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누구나 패배를 두려워한다. 그렇지만 희망을 가지고 싸운다. 9년간 일생을 걸고 투쟁하고 있는 밀양송전탑 어르신들이 대표적인 예다. 맞다. 정부와 한전은 막무가내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패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실패'를 선택하지 않았다.

밀양이 바뀌지 않고, 경남이 바뀌지 않고, 대한민국이 바뀌지 않는 것은 '패배'가 두려워 '실패'를 선택한 다수의 사람들 덕택이다.

그 여학생을 다시 만나면 말하고 싶다.

"그래, 당장은 그렇게 보일거야. 하지만 세상은 꿈꾸고 행동하는 사람들로 인해 바뀌는 거야."라고. 그리고 "아저씨가 아니라 오빠야."라고 말해주고 싶다.

/송보현(송보현의 난타·http://songbohyu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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