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공무원]통영시 감사계장 임채신 씨

6남매 중 장남이었고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셨다. 시대의 가난이 임채신(58·통영시 감사계장·사진)과 가족을 옭아맸다. 가난에 방황하던 젊은 날이 있었다. 입대 전 그는, 간절히 돌파구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직이 비인기직이었던 그때, 그는 공무원 시험을 쳤다.

제대 후 임채신은 통영시 평림2동 사무소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장사를 생각했고 '당분간' 있겠다던 이 생활이 벌써 30여 년이다.

"'전복 막걸리'를 아시나요? '조립식 어초'는? 그리고 '옹기 화덕 구이기'는? 악취 방지 '맨홀 뚜껑'과 '쓰레기 보관 장치' 등등. 모두 통영 공무원이 발명했고, 모두 특허를 낸 제품들입니다. 시 재정이 열악하니 특허 로열티로 시 세외 수입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였지요."

   

2009년 통영시 공무원 23명이 발명 동호회 'Ibank'를 만들고, 임채신은 이 모임의 초대 회장이 됐다.

1980년대 초 통영 한 논두렁 위, 밥솥만 한 돌덩이를 든 영농회장의 가랑이 아래에 젊은 공무원 임채신은 머리를 집어넣고 있었다. 종종 취했던 영농회장은 소리치고 욕하고 꼬장꼬장한 성격까지, 일마다 방해였다. 회장은 "내 논 한쪽을 쥐가 갉아 하얗게 변해버렸다"고 그날도 소리쳤다.

"벼멸구겠지요." 영농회장과 승강이 한 그는 "확인해 보자"며 현장을 향해 달려가, 하얗게 센 논 안으로 냅다 뛰어들었다.

당황스럽게도 회장의 말이 맞았다. 진짜 쥐였고, 익어가는 나락 목을 쥐가 싹둑싹둑 자른 것이 확인되는 순간 "맞제? 내 니 직이삘란다"며 기세등등한 영농회장이 돌덩이를 들고 이를 갈았다. 임채신은 영농회장이 든 돌멩이 아래에 머리를 처넣고 외쳤다.

"고마, 직이삐이소!"

그날 두 사람은 술집으로 들어가 잔을 놓고 마주했다. 잔이 돌고, 악감정이 술로 터져 나오고, 시시비비를 따지고, 먼저랄 것도 없이 어깨에 손이 얹히고, 농부의 아픔이 들리고…. 공무원 하소연이 술잔에 녹으면서 임채신과 영농회장은 절절히 취해갔다.

"별명이 감사계 '임칼'이었죠." "임채신 계장 감사계 발령이 당시 가장 잘된 인사였습니다."

공무원들이 한 말이다. 이들은 그를 두고 "감사의 표본"이라고 했고, "인간적인 감사를 하는 분"이란 말까지 했다. "실력이 있으니 업무 조언도 거리낌 없다"는 말까지 들렸다.

그해, 사고는 욕지도에서 터졌다. 공무원 지인이 아내 명의의 땅에 "밭 흙을 좀 파 가겠다"고 한 게 심하게 파였고, 바로 위 남의 밭이 위험하게 됐다. 민원이 제기되고 법정비화 되면서 땅주인은 200만 원 벌금 판결을 받았다. 이후 민원인은 '나쁜 공무원'이라며 청와대와 시청 등에 진정한 뒤 '현금 6000만 원'과 '길이 없는 땅에 길까지 내어 달라'고 요구했다.

감사를 한 임채신은 과도한 민원으로 판단, 부부 법적 관계인 '일상가사대리권'이란 것을 해석하면서, 이 땅의 경우 아내의 땅이지 공무원인 남편과 관계없다는 법률적 근거를 제시하게 된다. 이후 민원은 깔끔하게 해결됐다.

"감사란 뒷조사나 징계일 수만은 없지요. 사람을 살리는 감사가 진짜 감사입니다."

이 말처럼 임채신의 욕지도 감사가 아마 '살리는 감사' 중 하나였지 않나 싶다.

공직 10년 만에 그는 감사 업무를 보게 됐다. 1990년대 중반 다시 1년 정도, 90년대 후반 약 4년을 다시 감사직으로 일하고 20011년 이후 현재까지 감사직에 있다. "공직에서 부끄럽지 않았다", "의도적이고 부당한 잘못은 철저히 가려내고자 했다"고 임채신은 소회했다.

2001년 감사원종합감사유공과 2012년 정부모범공무원상은 그가 받은 8개의 상 중 단연 눈에 띄는 것들이었다.

다시 공무원 초기, 쌀 수매 지침을 받고 오토바이를 타고, 논밭을 누비며 쌀 매상 수를 맞추고자 "프라이팬에 볶아서라도 매상을 올려 달라"며 농민들을 붙잡고 애원하기도 했다.

한산도 근무 당시, 사정이 있던 사찰에 땅 불하 방법을 조언해주면서 인연이 돼 차를 마시게 됐다. 관광과에 근무하던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그는 거의 매일 "다방문 열었다"고 말하며, 아침마다 직원들에게 녹차를 대접했다.

지금, 기획감사실에서도 기회가 될 때마다 일과 시작과 함께 그는 임채신 계장 표 녹차를 끓이고 향기를 나눈다고 했다.

/허동정 기자 2mile@idomin.com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