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부터 창원다문화어린이도서관 '모두' 운영 실장이라는 새로운 명함을 하나 갖게 되었다. 지난해 말 경남이주민노동복지센터에서 함께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전화를 주었다. 5년여의 시간 동안 그곳에서 한글학교와 다문화도서관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했지만 제안은 뜻밖이었다. 더욱이 이미 올해 강의 일정이 모두 잡혀 있는 상황이라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거절의 말씀을 드리러 간 자리에서 도서관의 어려운 형편에 대해 들었다. 설립 당시 도서관은 STX에서 매년 5000만 원이라는 돈을 목적 기탁하여 운영해 왔다. 그런데 STX가 어려움에 빠지자 이 기업이 후원하는 모든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시청, 도청, 교육청 등을 방문해 백방으로 호소했지만 올해 예산 편성이 끝나 어쩔 수 없다는 답만을 듣고 돌아왔다 한다. 결국 어찌 어찌 마련한 한 명 분의 임금으로 두 사람이 일자리를 나누어 시간제로 일하기로 결정하기까지 오랜 고민과 갈등이 있었지만 도저히 거절의 명분이 없었다.

내가 맡은 가장 중요한 역할은 조직 구성과 후원회원 확보 등이다. 솔직히 마음 한편으로는 이 위기가 기회가 되어 더 많은 이가 다문화도서관에 관심을 갖고 소액 후원이나마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장 눈앞의 현실은 척박하고 암담하다.

이주민 140만 명 시대, 그토록 많은 다문화 관련 행사와 예산이 있다는데 정작 가장 잘 활동해 왔던 시민사회단체가 결정적인 어려움에 놓인 현실이 안타깝다. 다문화 어린이합창단을 결성해 다문화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많은 다문화 도서를 비치해 향수와 지적 갈증을 풀어주는 곳, 기댈 곳 없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사회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이곳, 그리고 한국 학생들에게 다문화 사회의 현실을 알려주고 체험하게 하는 곳이 바로 다문화도서관이다.

지난 연말 다문화 합창단 정기 공연을 관람하며 그 맑고 고운 목소리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자라서 이 사회의 주류로 편입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먼먼 나라에서 민들레의 홀씨처럼 날아 와서 이 땅에 뿌리 내린 사람들, 그들에게 한국은 때로는 거대한 언어 장벽에 가로막힌 무서운 곳이었고 때로는 편견과 홀대로 마음 아픈 곳이었을 게다. 하지만 이곳은 결혼이주여성이 낳은 아이들의 모국이며, 어머니가 되어 이 사실을 통감하는 순간에 대부분 이주여성들은 심청이 콤플렉스를 벗고 이 땅의 어머니로 자리하게 된다. 그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들을 이끌고 교육하는 것이 다문화도서관의 일이다.

   

무엇부터, 어떤 일부터 해야 하나 공연히 바쁘고 마음이 허둥댄다. 하지만 나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결국 사람의 힘, 사람의 마음이 이 험난한 현실을 이기게 하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더 많은 이가 소액의 후원, 재능 기부, 봉사 활동에 참여해 훗날 지금의 고민을 웃으며 이야기하게 되리라는 데 나의 믿음을 걸어본다.

/윤은주(수필가·한국독서교육개발원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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