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64) 산청 승현농장 유승현 대표

하우스에 들어서자 진한 딸기향이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딸기는 입보다 코로 먼저 먹는 듯 달콤한 향기가 휘감는다.

요즘 시장이나 마트 등에서 흔히 딸기를 볼 수 있지만, 신선도에서 비교가 안 되는 '산지 딸기'는 마치 모형처럼 단단함마저 느껴지는 모양새다.

빨갛게 잘 익은 딸기 한 알을 줄기에서 바로 따서 입에 넣으니 상큼한 단맛이 혀를 감싼다.

◇초보 귀농인의 하우스 농사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유승현(46) 대표는 IMF 외환 위기 때 귀농하게 됐다. 15년 전이다.

일가족은 벼농사를 짓던 부모가 살고 있는 고향 산청군 신안면을 찾아왔다. 유 대표가 처음 선택한 작물은 수박과 호박이었다. 여름철에는 수박을 키우고, 그것이 끝나면 주키니 호박을 키웠다.

여러 교육을 통해 기술을 배우고 정성을 다해도 아무런 경험이 없던 시절. 하우스 작물이 돈이 된다는 이야기에 선뜻 시작했지만, 농작물은 초보 귀농인에게 쉽게 성공을 허락하지 않았다.

호박은 키우기 쉬워 초보 농민이 쉽게 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의외로 힘들었다. 적당한 크기 같아 수확했는데, 살짝 커서 상자에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 그러면 그 호박은 상품으로 내놓을 수 없었다.

유 대표 부부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힘들게 일해도 돈이 안 되니 작목 전환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2년 만에 딸기로 눈을 돌렸죠. 수박은 출하가 한철이지만, 딸기는 수확 기간이 긴 것이 장점이었습니다."

산청 승현농장 유승현 대표는 서서 딸기 수확이 가능한 하이베드 시설로 태풍 피해를 줄이고 노동력도 절감했다.

주위에 딸기를 재배하는 농가가 많았다. 다시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우며 유 대표는 13년 전 딸기로 완전히 전환했다.

"농사라는 게 해마다 잘 될 수는 없습니다. 또 누가 어떤 작물로 성공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될 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무분별하게 많은 농민이 한 작물에 뛰어들었다가는 생산 과잉으로 모두 망하기 쉽습니다. 특히 기술이나 경험이 없는 귀농인이 마지막 남은 자본을 모두 투입해 남 따라가기를 했다가는 그 데미지가 더 클 수 있습니다. 귀농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3번의 고비, 그리고 하이베드

다른 일도 그렇지만 농업도 다른 농민들에게 노하우를 알려주지 않으려는 배타적인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유 대표는 주위 선배 농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웃들이 같이 농사를 잘 지어서 규모화하자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혼자서는 힘이 듭니다. 공동출하를 위해 같은 곳에서 같은 작물을 키워야 합니다. 딸기는 금세 물러져 개인이 조금씩 판매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주위의 도움도, 각종 교육도 자연재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유 대표의 하우스가 자리 잡은 지역은 지대가 낮은 편으로 태풍이 오면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곳이었다.

태풍으로 농사를 그만두고 싶을 만큼 큰 고비는 3번 있었다. 한 번은 큰 태풍이 왔을 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나와 봤더니 하우스 지붕만 겨우 물 밖으로 드러나 있은 적도 있다. 유 대표 부부는 그 모습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우스 어깨까지 물이 차서 딸기가 모두 물에 잠겼죠. 정말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번에 물이 들면 그때는 정말 농사를 때려치우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랬는데 그 이후부터는 괜찮네요."

괜찮아진 이유는 2가지. 하나는 양천강 줄기에서 최고 상습침수 지역인 이곳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이 지역에 배수펌프장을 설치한 것이다.

또 하나는 바로 하이베드 시설. 예전에는 딸기를 마치 상추처럼 땅에서 키웠지만, 이제는 점차 하이베드(고설) 시설로 바뀌고 있다. 즉 허리 높이의 배지에서 키우는 것으로, 비용은 많이 들지만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고, 서서 수확할 수 있어 노동력도 절감되는 장점이 있다.

"5년 전 도입했는데, 그전에 1년 정도 준비를 했습니다. 여러 교육에 다니면서 신기술을 접하고 관리 요령을 배웠습니다. 현재 전국에서 하이베드 시설이 가장 많은 곳이 산청입니다. 그만큼 앞선 기술을 빨리 도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애로는 있다. 가장 큰 것은 난방비 등 농비가 많이 드는 것과 노동력 부족이다. 특히 모종을 준비하는 봄에는 일손이 많이 달린다.

"겨울에는 딸기를 5~7일마다 출하하지만, 봄엔 2~3일마다 땁니다. 봄에는 일손 구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주로 부모님 등 가족들이 총동원됩니다."

승현농장에서 수확한 딸기.

◇14개월 농사

딸기는 9월 초 정식 후 11월 초부터 출하해 다음해 5월까지 이어진다. 5월에 수확하는 딸기는 주로 잼용이다. 육묘는 3월부터 하는데, 자가 육묘로 8월까지 키운다. 그래서 딸기를 흔히 14개월 작물이라고 한다. 농민이 쉴 틈이 없다.

"이곳은 육묘가 잘 됩니다. 딸기 농사는 육묘에 90%가 달렸습니다. 기온이 너무 따뜻하면 육묘가 잘 안 되는데, 이곳은 다른 지역에 비해 선선한 편입니다. 딸기는 씨앗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육묘를 이용해 재배하는데, 그래서 가격 변동이 크지 않습니다. 농비가 많이 들지만, 씨앗을 뿌리는 대로 딸기가 자랄 수 있다면 아마 딸기 농민들은 망했을 겁니다."

유 대표는 6000㎡ 농장에서 작년 20t 수확했다.

이곳에서는 딸기 품종 중에서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설향'을 키운다. 새콤달콤하고 수분이 많아 소비자들이 좋아하지만, 저장성이 떨어져 국내용으로만 내보낸다. 주로 서울 가락동 시장과 농협 하나로마트로 출하된다.

"택배 발송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신선도를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아침에 하우스에서 싱싱한 딸기를 따서 보냈는데, 다음날 소비자에게 도착한 것이 그 모습이 아니면 고객들은 실망할 겁니다. 산청 딸기가 다른 지역보다 좀 일찍 나오는 편인데, 한번은 대구에 사는 임신부가 딸기가 너무 먹고 싶어 수소문하다가 어찌 알고는 연락이 왔더군요. 그래도 택배를 못 보내 주겠다고 하니깐 직접 와서 사가기도 했습니다."

싱싱하고 맛있는 딸기를 소비자에게도 그대로 맛 보이고 싶은 유 대표의 고집이다.

◇끝없는 교육과 경험의 결합

유 대표 부부는 요즘도 진주 등지에서 교육이 있으면 받으러 다닌다.

"아내와 같이 교육을 많이 받습니다. 기술이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 해 한 해 쌓은 경험과 교육이 함께 해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습니다. 하이베드를 처음 도입할 때 1년간 각종 교육을 받고 네덜란드에 벤치마킹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교육으로 들을 때는 잘 몰랐던 것을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깨치고 알게 된 것이 많습니다."

농사는 해마다 다르다고 한다. 그래서 올해는 이러니 내년에는 저렇게 해야지, 요렇게 해야지 하며 해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유 대표는 농사 규모를 늘릴 계획은 없다. 지금이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적절한 규모라고 생각한다. 아들이 뒤를 잇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기계에 관심 많은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할 참이다.

더 좋은 딸기를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고, 그것을 농가에 보급하는 것. 그것이 유 대표의 꿈이다.

<추천이유>

◇최인락 경상남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가 = 승현농장 유승현 대표는 딸기 하이베드시설 재배로 연간 20t의 많은 수확량을 올리는 지역 핵심지도자입니다. 10여 년 재배 경력과 네덜란드, 벨기에 등 선진농업 기법을 접목하고 도내 교육농장 모델로 활용하면서 국제적 안목과 노하우를 이웃농가에 확산시키는 진정한 강소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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