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마지막 날 끝난 철도노조 파업의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철도 파업은 지난봄 진주의료원 폐업 반대 투쟁과 함께 박근혜 정권 들어 가장 치열하고 굵직했던 노동의 저항이었다. 이견도 있겠으나 모두 노동이 패배를 피하지는 못했다. 만만치 않은 투쟁력을 갖춘 보건의료노조와 철도노조가 정치권 등의 지원 속에 펼친 총력전이었다는 점에서 노동의 입장에서는 더욱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잘 알려진 대로 두 사안은 사회 공공성을 둘러싼 싸움이었다. 그만큼 많은 국민의 눈이 향했고 찬반도 팽팽했다. 하지만 노동은 정부와 경남도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넘어서지 못했다. 소위 '귀족·강성노조'론이 대표적이다. 노조 측은 예의 '익숙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노동 시간, 근속 연수, 다른 유사 사업장과 비교 등을 근거로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데 많은 동력을 투여했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비정규직과 양극화 확산이 시대 화두로 부상하면서 정부·언론으로부터 기득권 집단으로 공격당했던 대기업 노조의 반박 논리와 다르지 않았다.

당시는 그래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등 노동에 대한 신뢰가 나름 높아 담론 투쟁에서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았으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노조 조직률 10%, 비정규직 비중 50%, 청년 실업률 8%, 전체 노동자 평균 연봉 3000만 원, 해고·실업의 일상화라는 숨 막히는 현실은 많든 적든 조금이라도 더 가진 자에 대한 상실감을 키웠다. 노동은 노동대로 그나마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계속 움츠러들기만 했다. 각종 비리와 내부 정파갈등 등이 빚어낸 끝이 보이지 않는 위상 추락까지 겹쳤다.

국제 노동단체 대표단과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19일 오후 서울 용산경찰서 앞에서 수감 중인 철도노조 지도부 면담을 마친 뒤 노조 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뭔가 반전을 위해선 새로운 접근이 필요했지만 노동의 레퍼토리는 10여 년 전 그대로에 멈춰서 있다. 저소득층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정서를 고려했다면 "철도 노동자 평균 연봉이 약 6300만 원이다. 흔히 박봉이라는 공무원 평균 연봉이 5220만 원인데 이게 귀족인가"(철도 파업 참가자) 같은 주장은 나와선 안 됐다. 공무원을 '박봉'이라 여기는 계층이 과연 얼마나 될까. 본질을 호도하려는 상대편 전략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치밀하고 신중한 논리가 절실했다. 업무 특성상 이 정도 임금을 받고 있으며 그만큼 국민의 불편함이 없도록 공공성 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받아치고 넘어가는 게 좀 더 현명하지 않았을까?

책임론 공방도 그렇다. 철도노조와 보건의료노조는 경영 적자·부실의 책임을 사측이나 관계 당국에 묻는 데 온힘을 쏟았다. 역시 익숙했다. 억울함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한때는 노동자 경영 참여를 이슈로 던지고 나아가 정당(민주노동당)을 만들어 국가 운영까지 도전했던 노동 세력이다. 부실의 근원이 된 문제에 노조가 어떻게 맞서왔는지 밝히고, 설사 그 과정에서 노조의 지지나 방기가 없었더라도 국민 세금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일 대안을 내놓는 게 책임 있는 자세 아니었을까.

민주노동당 해체부터 민주노총 조직력 약화까지 희망의 근거를 찾기 어려운 시절이나 그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사람들 또한 무수히 늘어나고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노동 담론의 정체(停滯) 내지 패퇴는 노동자는 물론 대다수 서민의 고통 심화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던졌던 그 절절한 진심이, 노동에 등을 돌린 이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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