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가창오리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한 전북 고창 씨오리 농장 인근의 저수지에서 발생한 가창오리 떼죽음을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오랜 기간 함께 이동하는 가창오리떼 사이에 바이러스가 퍼져 집단 폐사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주장과 폐사한 철새의 가슴에 있는 먹이주머니가 가득차 있으면 원인이 독극물일 수 있다면서 철새들이 독극물을 섭취하고 극심한 갈증에 시달리다 물을 먹기 위해 집단으로 저수지로 몰렸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가창오리는 어떤 야생 조류일까? 북한에서는 반달오리, 태극오리로 부른다. 특징은 다채로운 색깔과 눈을 시작점으로 얼굴에 나 있는 줄이다. 수컷은 몸 전체가 화려한 데 비해 암컷은 수수한 갈색을 띤다. 황금노을에 빛나는 머리와 색동옷 같은 털에 노랑과 초록색 뺨을 태극무늬처럼 지니고 있다.

쇠오리처럼 몸집은 작아도 곱고, 해질 무렵 뛰어난 군무를 펼치는 가창오리는 국제 보호조로 지정돼 있다. 영어로는 '바이칼 틸(Baikal Teal)'로 불리는 이 새는 우리가 사는 주남저수지에도 한때, 해마다 늦가을이 되면 해질 무렵 붉게 물든 하늘에서 군무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주남저수지, 충남의 서산간척지와 금강 하구 등에 평소 도래하는 시기에 변화가 오면서 그 원인 규명에 논란이 일고 있다.

   

가창오리들이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몽골의 대평원을 지나 한국까지 오는 동안 중간 기착지가 되는 곳은 세계 최대의 바이칼 호수다. 둘레 2200㎞, 면적 3만1500㎢의 넓은 바이칼 호수가 이들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가창오리에게 붙여진 영어 이름 바이칼 틸은 바이칼 물오리란 뜻이다.

고향이 바이칼 호수인 셈이다. 가창오리는 기러기목 오릿과에 속하며 러시아 레나강에서 시베리아 동부, 남쪽으로는 아무르와 사할린 북부, 동쪽으로는 캄차카 반도와 코만도르섬까지 넓은 곳에 분포한다.

산란지에서는 둥지를 낙엽송·버드나무 등의 나뭇가지로 만들며 옅은 회녹색의 알을 6∼9개 낳는다.

주로 호수·소택지·습지·못·논·하천·해만 등지에서 생활하며 먹이는 풀씨·낟알·수서곤충 등이다. 겨울 동안 이들이 즐겨먹는 먹이는 볍씨다. 지금은 거의 전남 해남 고천암과 전북 고창 동림저수지, 금강 하구에서 겨울을 보낸다.

그렇지만 일부 겨울 서식지에 변화가 오면서 그 원인 규명에 논란이 많다. 특히 가창오리의 군무는 군산 철새축제의 대표적인 상징이었으나 금강하구에서 제 때 볼 수 없어 방문객들이 감소해 축제가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였다. 서산과 금강하구 주변 농경지에서 먹이터 변화로 도래지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추측하면서 대책 마련을 위한 워크숍이 개최되기도 하였다.

주남저수지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전세계 가창오리 가운데 90% 이상이 국내로 찾아와 겨울을 나는 것으로 학계에 보고되면서 오래 전부터 영국을 비롯한 외국 탐조객들이 겨울이 되면 비싼 돈을 내고 가창오리를 보기 위해 주남저수지를 비롯한 국내 가창오리 월동지를 일주일 정도 여행을 한다.

이렇게 귀한 가창오리를 비롯한 물오리들은 AI의 주범으로 오인받으면서도 태극무늬를 반달처럼 곱게 겹으로 달고 어둠이 내리면 물 위에서 일제히 비상한다. 사람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하늘에서 멋진 용춤을 추는 가창오리들의 나쁜 이미지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밤이다.

/이인식(우포늪 따오기 복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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