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말고도 살고 있네요] 쇠무릎

이번 겨울에는 우리 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에서 경남 지역에 만들어 놓은 생태통로를 조사하는 일을 맡아 찬바람을 맞으며 도롯가 언덕길을 누비며 다녔습니다. 언덕을 훑어내리는 겨울바람 속에서도 풀들은 끝없이 뿌리의 힘을 노래합니다. 바람이 거셀수록 바삭대며 지탱해온 잎·줄기들 덕분에 그곳의 주인이 누구인지 파악할 수가 있었습니다. 문명이 갈라놓은 산등성이 도로 위를 생태통로를 통해 아슬아슬 넘어다녔을 동물들의 흔적에서 토끼·고라니·산돼지들의 안부와 산·숲·들풀들의 겨울 소식도 즐겁게 만납니다. 한겨울 산 숲에서 봄을 상상하는 일만큼 행복한 일도 없지요. 앙상한 줄기 비목나무 가지에 곁들어 있는 꽃눈 하나에서 무성한 오월의 샛노란 꽃송이를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낮은 수술 속을 지나오니 풀들의 씨앗이 온몸에 가득 붙었습니다. 겨울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풀들의 마지막 전략에 우리 몸이 한몫한 것이지요. 솔새·짚신나물·쇠무릎·털이슬…. 셀 수 없이 많은 풀의 씨앗들을 물끄러미 살피며 '곳곳이 생명이구나' 땅 좋은 양지로 가서 털어냈습니다.

   

오늘은 내 몸에 가장 많은 씨앗을 붙이고 나왔던 쇠무릎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비름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이 못생겨서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는 천덕꾸러기 들풀입니다. 그랬던 이놈이 요즘 '대세'라고 하네요. 각종 매체에서 관절염에 좋다고 연일 뜨고, 약초꾼들이 얼마나 캐냈던지 귀해지고 있답니다. 급기야 몸에 좀 좋다면 남아나는 게 없는 세상이 왔습니다. 지난해는 종편방송들이 유난히 산약초 건강법 소개를 많이 해서 전 국민이 약초꾼으로 변할 지경이라네요. 그 바람에 산야가 또 다른 위기를 맞습니다.

어린 날엔 대보름이 지나고 뿌리에 물이 오를 때쯤이면 양지쪽 산기슭, 밭 언덕, 물가 수풀 아무 곳이고 가득했던 쇠무릎 뿌리를 캐러 다녔습니다. 잎이 떨어지고 줄기만 남아도 알아보기 가장 쉬웠던 부분이 마디인데요. 줄기의 마디마다 마치 소의 무릎처럼 툭 불거져 있답니다. 그래서 '쇠무릎'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약명도 '우슬(牛膝)-소의 무릎'인데요. 실제로 약효도 무릎에 탁월하니 절묘한 명명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뇨·정혈·통경 약으로도 효능이 있으며 산후복통이나 난산·월경 불순에도 효험을 보인다고 합니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으며, 싱싱하게 물오른 쇠무릎 뿌리를 한 소쿠리 캐다가 뒤꼍 골담초와 오갈피, 해동피 가지, 동구밖 산밭 기슭의 접골목 가지, 텃밭가 자리공 뿌리, 뒷산의 삽주 뿌리 한 움큼 캐다 넣고는 푹 고아서 새까맣게 우러나온 그 물에 엿기름 넣고 불려 걸러낸 물로 약식혜를 만들어서 해마다 먹으면서 자랐는데요. 덕분에 건강한 관절로 잘 뛰어다닙니다.

올해도 산야초를 활용한 자연 건강 찾기가 이어질 것인데, 무분별한 채취꾼들의 종훼손이 걱정됩니다. 자연 속에서 건강을 찾고 행복을 누리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지만, 생태를 훼손하지 않고 함께 공존해 나갈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좋은 약초들의 종을 보호하고 재배기술을 개발하여 자연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박덕선(경남환경교육문화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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