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한국학생운동사 한 획 그어…최고령 상담교사 합격도

이연숙(여·57·사진) 씨가 별세했다.

안식년을 맞아 중국에 머물고 있는 남편(김재현 경남대 철학과 교수)과 함께 겨울 한때를 보내던 중 지난 13일 현지에서 뇌출혈로 급사하면서 주변 지인들은 물론 지역사회에 안타까움과 충격을 주었다.

고인의 주검은 힘겨운 과정을 거친 끝에 지난 18일 마산에 당도할 수 있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리듯 마지막 여행길은 그토록 멀고도 험했다.

유신 말기, 1978년 고인은 서울여대 농촌과학과에 재학 중이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사립 여대에 다닐 형편은 아니었으나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터였다. 그리고 한국 학생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녹수회 주축 멤버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서울여대 유인물' 사건으로 구금됐다. 이때 대학생 연합 서클 모임을 하며 알고 지내던 김재현 교수(당시 서울대 재학)가 고인의 옥바라지를 하며 서로 사랑을 키워나갔다는 이야기는 당시 학생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1986년 남편과 함께 마산에 온 고인은 우리 지역사회에 본격적인 여성 운동이 태동하던 현장에도 서게 된다. 가톨릭 여성회관을 중심으로 첫걸음을 떼기 시작한 지역 여성운동은 1987년에 접어들면서 그 외연을 점차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다. 고인은 지역 여성계를 대표하는 많은 이들과 함께 교류하며 행동하는 시민으로 살아왔다.

1996년부터는 경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했고 창원대학교 전문상담 교사 양성과정도 이수했다. 남편이 교수였지만 "학습지 회사에 다니면서 한 학기 공부하고 한 학기 휴학하기를 반복하면서 공부"를 하던 때였다.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적성과 잘 맞아서 그런지 열심히 했던" 시절이었다.

가정 형편 때문에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에 진학했고, 또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때를 놓쳤던 공부를 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리고 고인은 지난 2007년 지천명의 나이에 '경남도교육청 공립 중등·보건·사서·전문상담·특수교사' 시험에서 최고령 합격자라는 영예를 안았다. 이때 고인은 "저처럼 가정환경이 어려워 자기 진로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큰 힘이 되고 싶어요"라고 소회를 밝혔다.

고인은 창원 좋은벗 상담교육센터 연구원, 성가족 상담소 소장, 경남대 가정교육과·심리학과 강의, 마산교육청 순회 전문상담 기간제 교사 등의 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상담 특수교사로 일선 중학교에서 교사직을 수행하고 있었다.

고인은 지난 2007년 "저 같은 시행착오를 아이들이 겪게 하고 싶지 않아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그 나름의 상담이 필요하겠지만 자신의 진로에 대해 아무런 계획이 없는 학생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상담이 필요한 것이거든요. 저도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온 힘을 쏟을 거고요"라고 의욕을 밝힌 적이 있다.

환경과 사회 여건이 어려웠지만 자신이 발 디딘 현장에서 등을 돌리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며 삶을 개척해 온 고인은 남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교훈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빈소는 마산연세병원 장례식장, 발인 20일(영결 미사 오전 8시 월영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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