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머리카락으로 작품 만드는 김옥순 미용실 원장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 '멋쟁이뷰티'.

겉모습은 어느 동네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미용실이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10평 남짓한 공간에 미용실 의자 서너 개 놓여 있는 작은 공간. 벽면 곳곳에 그림과 머리핀, 브로치 등 장신구가 걸려 있다.

언뜻 보면 그냥 인테리어를 위해 걸어둔 그림이고, 미용실이니 당연히 있을 법한 머리 장신구 따위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 그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평면의 캔버스를 화분 삼은 듯 수련, 수선화 따위의 꽃들이 툭 튀어나와 자라는 모양새다. 독특하게도 실제로 3차원의 작품이다. 이 작품의 재료는 더 독특하다. 바로 사람의 머리카락이다. 붓과 물감으로 캔버스에 배경을 칠하고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꽃을 붙였다.

이것들은 모두 멋쟁이뷰티 원장 김옥순(54) 씨의 작품이다. 김 씨는 동네 미용실 원장이지만 앞에 붙는 직함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이미 개인전과 단체전을 네 차례 열었고 대한민국미술대상전 등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경력이 있는 화가이기도 하다.

미용실에서 잘려진 머리카락으로 장미, 해바라기 등 자연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드는 김옥순 원장.

미용 경력 31년 차인 김 씨는 우연한 계기로 미용업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부산이 고향인 김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간호학원에 들어갔다. 병원에서 일하던 22살 무렵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친구의 언니가 하는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3개월가량 미용실에서 일한 김 씨는 병원을 그만두고 미용사를 하기로 결정한다.

"재미가 있었어요. 돈도 많이 주고…. 그 당시 한일합섬 다니는 친구보다 월급이 배로 많았거든요."

그 길로 미용학원에 등록했고 미용사자격시험에 단번에 합격했다.

고향을 떠나 옛 진해 우일예식장 근처 미용실에서 일하던 김 씨는 1987년 2월 지금 자리에 자신의 미용실을 차렸다. 올해로 27년째 한 자리를 지켜온 김 씨는 웬만한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교방동의 터줏대감이다. 물론 그 시간만큼 단골도 많다.

"미용실 아줌마라는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미용실을 운영해오던 김 씨가 미용실을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 것은 김 씨 말에 의하면 "부글부글 끓는 열정" 때문이다.

그래서 도전하게 된 것이 미용대회. 지난 2002년 국제 미용대회에 출전할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한 전국대회에서 김 씨는 시상대 꼭대기에 섰다. 이어 국가대표로 출전한 국제대회에서도 3위.

그 덕분에 창신대학교에 막 생긴 미용예술학과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4년 전에는 미용기능장에 도전해 자격 취득에 성공했다.

김 씨의 도전은 계속됐다.

학생들의 졸업작품전시회를 지도하면서 작품에 쓰인 머리 장신구에 마음이 꽂혔다.

"예부터 장신구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잖아요. 그런데 기존에 쓰는 장신구들이 촌스러워 보였어요. 왜색이 짙어보이고…. 그래서 내가 직접 만들어보자 생각했죠."

재료는 김 씨에게 익숙한 머리카락이었다.

작업 방식은 이렇다. 머리카락을 탈색한 후 결대로 가지런히 하고 그것을 목공풀을 이용해 이어붙인다. 그런 후에 필요한 모양대로 잘라 장신구를 만드는 식이다.

그런 김 씨는 지난 2011년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경남대 산업대학원에 입학해 산업미술학을 전공한다. 미용에서 미술로 영역을 확장하게 된 것이다.

"사실 그림을 배울 수 있을 줄 알고 입학했는데 대학원 공부는 이론이더라고요. 결국 실기는 제가 직접 발로 뛰어야 했어요."

화가는 물론 서각작가, 도예가 등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어떤 날은 3개 시를 돌아다니기도 했고 자동차에 가득 채운 기름이 하루 만에 바닥을 드러낸 날도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김 씨는 일하는 동안에도 틈틈이 짬을 내 작품을 만들어 각종 미술대전에 출품해 입상했다.

그렇게 화가의 길로 들어선 김 씨. 그의 작품은 하나 같이 장미, 해바라기 등 식물이 소재다.

"자연은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잖아요. 세상 만물의 토대는 자연이고 자연 없이는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으니까. 머리 장신구를 만들 때도 자연을 소재로 삼았어요. 그게 미술 작품을 만드는 데도 이어진 거죠."

김 씨는 지금 두 가지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우선 올해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것. "이번에는 제법 큰 작품을 구상하고 있어요. 30호 크기 정도. 이게 출품할 작품 소재고요"라며 김 씨는 스마트폰을 꺼내 구절초 군락 사진을 보여줬다. 무수히 많은 꽃송이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캔버스 위에서 꽃망울을 터뜨릴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김 씨의 또 다른 목표는 '대한민국 미용명장'이다.

"우리나라에 미용명장이 10명밖에 없어요. 주위에서는 명장이 되기엔 아직 나이가 어리다고 하지만 해내고 싶어요. 스무 번째 안에 드는 것이 목표예요. 또 경남에는 아직 명장이 없거든요. 경남 1호가 되고 싶어요. 올해도 준비는 하고 있는데 내년에 합격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그런 김 씨에 대해 미용실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참 대단하시다고 생각해요. 일을 하다보면 손님이 없을 때에는 쉬실 만도 한데 가만히 계시질 않으세요. 우리가 쉬는 동안에도 머리카락으로 작품 만드시는 것 보면 존경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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