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봅시다]6개월간 같은 곳 주차…민원 쏟아져도 단속방법 거의 없어

창원시내 한 아파트 단지. 낮 시간이라 주차장은 한산했다. 밤이 되면 주차장으로 변하는 단지 내 2차로 도로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길옆 인도에 바짝 붙어 주차된 차량들이 띄엄띄엄 있었고, 주행하는 차량들이 교행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를 돌다 보니 어느 순간 1개 차로를 모두 차지한 채 주차되어 있는 차량 한 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반대편 차로 옆으로는 '길가 주차'가 허용된 듯 차량 몇 대가 서 있었지만, 1개 차로를 점령한 자동차 쪽에는 '길가 주차'를 금지하기 위한 탄력봉이 설치돼 있었다. 주차금지 탄력봉을 피해 이 차량은 아예 단지 내 길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1개 차로를 점령한 차량 때문에 교행은커녕 소형차 한 대가 아슬아슬하게 이 구간을 빠져나가야 하는 지경이었다. 특히 곡각지를 바로 앞에 둔 구간이어서 사고 위험이 커 보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의문은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풀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파트 단지 입주자대표회장과 관리소장 명의로 된 '진정서 제출을 위한 입주민 서명 협조 요청'문이 게시돼 있었다.

창원시내 한 아파트 단지. 길가 주차가 금지된 도로에 1개 차로를 완전히 점령한 차량(오른쪽)이 주차돼 있다. /임채민 기자

이 요청문에는 '도로 한가운데를 차지한 차량 때문에 통행 불편은 물론 사고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수차례 차량 주인에게 차량을 이동해줄 것을 요청했고, 입주자대표자회의에서도 경고조치와 위반금 부과를 하였으나 계속 주차를 하고 있다. 민원이 빗발치고 있어 부득이하게 경찰서에 진정을 하고자 하니 경비실에 비치된 진정서에 서명해 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한 입주민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 현관 앞에 있는 1개 차로를 거의 독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파트 관리소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문제의 차량이 1개 차로를 차지'한 지는 6개월이 넘어간다고 했다. "느닷없이 6개월 전부터 저곳에 주차를 하기 시작하더니 우리가 부탁도 하고 강요도 해봤지만 변화가 없다"는 하소연을 들을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내 도로는 도로교통법 적용을 받지 않아 법적 책임을 물을 사안이 되지 않을뿐더러 소방법상으로도 제재할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

관리소 관계자는 "200∼300가구가 서명에 동참하는 등 경찰 진정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경찰이라고 해서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도 답답하니까…. 소방서에서 평소에 소방통로를 확보해 달라는 협조를 자주 하기에 소방서에 요청해 소방법을 적용해보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아파트 입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을 이 관계자도 알고 있었지만 부득이한 상황에서 법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주차 문제를 놓고 승강이도 수없이 벌였다고 한다. 관리소 관계자는 "강제 견인을 하고 과태료를 물도록 해 경제적 불이익을 줄 수도 있지만 다들 어렵게 사는 서민들이어서 그렇게도 못하겠다"고 덧붙였다.

'문제의 차량' 주인을 만나봤다.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김창수(가명) 씨는 "말뚝(탄력봉)을 박을 필요가 없는 곳에 박아놓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아파트 관리업무에 대한 일종의 항의차원이라는 항변인 셈이었다.

김 씨는 "말뚝을 박으려면 다른 동 앞에도 박든지, 왜 하필 이곳에만 박느냐는 것이다. (내 의견은) 소수 의견이어서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차라리 말뚝 대신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주차 안내 오뚝이 표지판을 설치해놓으면 급한 일이 있을 때 주차할 수도 있고 좋지 않으냐"고 말했다.

또한 김 씨는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내가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쓸데없이 도로 폭 1m가량을 잡아먹는 탄력봉을 왜 이곳에만 설치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파트 관리소가 주민을 지배하려는 경향도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파트 관리소 관계자는 "탄력봉은 양 차로에 모두 주차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4년 전부터 설치해 놓은 것이다. 항상 민원에 귀 기울이고 민원이 없더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게 우리 일이다. 하지만 한 가구 때문에 전체 아파트 단지의 질서와 규칙을 바꿀 수 없는 노릇 아니냐. 일단 이번 주 안에는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소는 물론이고 김 씨 역시 지쳐 보였다. 서로 감정도 안 좋아졌다. 이럴 때는 외부의 시선과 진단이 도움될 법도 한데,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마산동부경찰서 관계자는 "진정이 접수되면 검토하고 해결책을 고민해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법적으로 단속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