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만 생활기록부 작성 요령과 관련한 연수를 두 번 받았다.

이것저것 중요한 내용을 연수물에 옮겨 적는 교사들의 입에서는 연신 한숨 소리가 나온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동료와 나의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2015학년도 교육부가 '대입 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향'을 발표하면서 '교사 추천서'를 대신하는 '생활기록부'의 영향력 확대로 학부모도 학생도 머리가 아프긴 마찬가지다. 대입 추천서의 신뢰성 문제에 대한 대안이기도 하고, 성실성과 성장 가능성 등 학생들의 고교 생활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생활기록부 반영 비율을 높여 교육을 정상화한다는 취지는 매우 매우 바람직한 듯하나 현장의 어려움을 모르는 소리다.

초등학교처럼 담임이 교실에 늘 붙어 있지 않고 고작해야 조·종례 시간이나 교과 시간에만 학급 학생들을 볼 수 있는 고교 담임들이다. 생활기록부를 담임의 판단으로 혼자서만 작성해야 하기에 무리가 있는 항목이 너무도 많다.

39명 학생의 '독서상황'만 해도 1명이 4~5권씩 심지어 10여 권에 달하며 이를 학기별로 나누면, 입력해야 할 사항은 배가 된다. 그뿐인가? 1년에 120여 시간을 보내는 '자율 활동'의 경우 수많은 활동 가운데 학생에게 유의미한 것을 일일이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각 항목이 거의 6000자까지 쓸 수 있고, 심지어 종합 의견은 8000자까지 쓸 수 있다. A4용지 한 장에 1400자 정도까지 쓸 수 있으니 한 항목당 빼곡히 5장 이상을 쓸 수 있는 분량이다. 대학 입시에서 요구하는 '자기소개서' 분량을 다 합쳐도 1만 자가 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비현실적인 분량이다.

학생들의 대학 진학에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염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생활기록부를 과장되게 쓸 수 있는 가능성보다 학생들의 학교 활동 가운데 내용이 누락될 여지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학부모들이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 접속해서 자녀의 생활기록부를 원하는 때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고, 내용이 누락되기라도 하면 곧잘 민원이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와 학부모, 학생의 불안이나 부담을 줄여 보겠다며 학교 생활 가운데 진로 관련성이 높은 활동이나 개인적으로 유의미한 학교 활동이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을 일부 언론에서 마치 학생이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것처럼 보도하고, 교육청은 또 이 같은 행태에 엄정 조치를 취한다는 공문을 내려보내니 일선 교사로서는 힘이 빠진다.

14년 간 교직 생활을 하며 10년 넘게 담임을 하고 있는 나로서도 올해같이 마음이 무겁고 부담스러운 생활기록부는 처음이지 싶다. 방학 내내 아이들의 기초 자료 조사지를 바탕으로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고 있으면서도 격려가 아닌 문책을 걱정해야 한다면 누가 담임을 하려고 하겠는가?

해마다 바뀌는 대입 제도도 문제지만, 현실 여건은 고려하지 않고 일부 교사들의 잘못된 행태를 일반화해서 보도하는 언론이나 언론 보도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교육청의 조치는 대다수 일선 교사에게 큰 상처가 되고 있다.

   

밤새도록 생활 기록부를 작성하고 지우면서 '내년에는 담임을 하지 말아야지' 같은 엉뚱한(?) 생각으로 아픈 어깨를 주물러본다.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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