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포늪에 오시면] (85) 깨침의 장소, 우포늪

◇철새들의 이동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아 오랜만에 집에서 오랫동안 텔레비전을 보았습니다. 마지막에 본 내용은 주인공 집 딸이 돈 벌 욕심이 과해 할머니와 부모 그리고 많은 형제들이 사는 소중한 집의 집문서를 부모께 말하지 않고 사기치는 사람들에게 맡겨버려 하루아침에 수십 년 살아온 집에서 쫓겨나게 되어 상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약간의 저축한 돈과 빌린 돈으로 마련한 산꼭대기의 작은 집으로 옮겨 새롭게 살아보자고 결의를 다지는 장면으로 오늘 부분이 끝났습니다.

우포늪의 꽝꽝 얼어붙은 얼음 위로 옹기종기 무리 지어 앉아 있는 기러기들을 보노라면 너무도 불쌍합니다. 우포늪의 큰고니들과 기러기류 그리고 다양한 오리류 등은 추위를 피하고 먹이를 얻기 위해 시베리아 등지에서 우리나라로 옮겨왔습니다. 과학자들은 새끼를 낳고 기를 장소와 겨울을 보낼 따뜻한 장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이주를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이동으로 정의합니다. 이주에 대한 외국의 사례를 보면 넓적다리센털도요라는 새는 알래스카에서 1만 km를 날아가 남태평양의 섬에서 겨울을 지낸다고 합니다. 이 새가 이동하는 동안의 3분의1은 쉬지도 먹지도 않고 태평양 위를 날아간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새들을 추적하는데 가장 유용한 방법은 새의 다리에 고리를 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마이클 스코트는 <살아 있는 자연>이라는 책에서 '처음 고리를 낀 새는 흰알바트로스로 1937년 고리를 장착한 후 54년이나 살았고,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한 새는 1955년 7월 북러시아에서 고리를 장착한 후 10개월 후에 2만 2530km 떨어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주 도중의 천적들과 추위를 피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와 우포늪에 둥지를 튼 철새들의 멀고도 먼 이동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얼마나 편하게 사는지 반성이 됩니다. 새해를 맞아 철새들이 우리 인간들에게 더욱 용감해지고 진취적이며 적극적으로 살아가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가시연꽃 뿌리

우포늪에서 가장 화려한 모습을 보여 방문객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는 예쁜 꽃은 가시연꽃입니다. 여름에서 초가을까지 피는 보라색의 화려한 꽃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집니다. 사람들이 꽃에는 관심이 있지만 기본이 되는 뿌리는 보지 않고 관심도 가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못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여름엔 꽃과 잎 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던 가시연꽃의 뿌리들을 한겨울인 지금 대대제방 밑에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약 3년 전 추운 겨울에 우포늪 전망대 밑의 물가에 가니 검은 물체가 떠 있었습니다. 이전엔 우포에서 전혀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우포늪 인근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보았을 것 같은 낙동강유역환경청 소속 감시원들에게 물어보고, 다른 우포늪의 활동가들과 주민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정확하게 말해주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가시연꽃의 뿌리가 아닐까 생각만 하고 생태관 수장고에 1개를 넣어두었습니다.

작년 여름엔 가시연꽃이 많이 피었습니다.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되니 뿌리라고 생각했던 그 검은 물체가 우포늪 제1전망대 밑에 2개가 보였는데 대대제방 밑에선 수십개가 보였습니다. 화려하던 가시연꽃은 오간데 없지만 이렇게 뿌리가 그 흔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름 우포늪에 활짝 핀 가시연꽃. /경남도민일보DB

근본인 가시연꽃의 뿌리가 있었기에 그 아름다운 꽃이 우포를 찾은 방문객들과 우포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서 사랑을 받았겠죠. 근본이 되는 뿌리를 보면서 기본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기본은 핵심이 되기도 하겠죠? 기본을 하지 않고 다른 것을 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작년엔 얼마나 나의 기본을 다했는가 반성도 하게 되고, 새해를 시작하는 올해는 기본에 충실하고 좀 더 열심히 하고자 다짐을 해봅니다.

겨울 우포늪에서 발견된 가시연꽃 뿌리. /노용호

◇어두운, 고요한 밤의 우포늪에서

해가 지고 난 뒤 우포늪을 걷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보호지역이라 불빛이 없어 어떤 데는 가기가 힘듭니다. 며칠 전 막 어둠이 밀려올 때 대대제방과 사지제방을 지나 주매마을에서 동네 어르신을 만나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자주 가던 곳이라 대대제방까지는 잘 왔지만 사지포제방으로 건너가려니 음침한 곳이라 겁이 났습니다. 주매 잠수교라는 곳에는 추억이 있습니다. 오래전 추석날 주매마을 학생들과 대대마을 학생들이 잠수교에서 패싸움을 해 동네 어른들을 시끄럽게 만들어 드린 적이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것도 농촌에 애들이 있었을 때나 가능하지 지금처럼 아이들이 적을 땐 생각도 못할 일이지요.

대대제방에서 잠수교 쪽을 보니 갑자기 사지마을 노인한테서 들은 하얀 옷을 입은 여자 귀신 이야기도 생각났습니다. 낮에 지날 때는 전혀 생각도 안 나던 일들이 밤에는 이상하게도 바로 떠올랐습니다. 건너기는 건너야 되겠기에 숨쉬기도 몇 번 하고 가벼운 몸 풀기 체조를 한 뒤 그 쪽을 보고 소리를 몇 번 질렀습니다. 그런데 기대도 예상도 하지 않은 일이 생겼습니다. 건너편에서도 "야"하고 소리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잘못 들었나 하고 몇 번 더 소리를 질렀지만 반응이 없어 잘못 들었다 생각하고 내려가는데 사람이 보였습니다. 너무나 반가웠죠. 지난여름 사지마을에서 우포늪생태관으로 올 일이 생겼을 때 같이 와 주었던 바로 그 청년이었습니다. 저녁 먹은 뒤 심심해서 나와 보았는데 잠수교에서 혹시 멧돼지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그러냐며 자기도 여기서 돌아가려 한다며 같이 사지포 마을까지 잘 왔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작년보다 우포늪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분답지만 해가 지면 너도나도 집으로 돌아가 우포늪은 고~요~한 곳으로 변합니다. 어둡고 무서워지니 사람의 중요성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우포의 어두움 속에서 저와 같이 걸어가 준 그 사람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같이할 사람 한 명 한 명이 매우 중요하겠죠? 어둠속에 같이 해줄 사람이 많으시기를 바랍니다. 우포늪 그 자체가 제가 박사학위를 받은 대학원보다 더 많은 깨우침을 주는 곳이네요. 우포가 가진 아름다움과 그 곳에서의 다양한 모습의 생물들과 생각이 다른 인간들…. 그래서 저는 최근에 만나는 분들에게 말합니다. "전 우포대학원에 다녀요". 

/노용호(창녕군 우포늪관리사업소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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