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두번의 결혼…아들 하나 없이 딸만 여덟

[가족이야기]자식보다 자신 더 사랑하는 일흔여섯 '까진 할매' 브라보

김봉임 객원기자 webmaster@idomin.com 2014년 01월 08일 수요일

그녀의 나이 76세, 일흔 넘은 대한민국 보통 여성들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그녀 인생 또한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한다. 1937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 전쟁통을 겪었으며, 보릿고개를 넘었다. 새마을 운동을 하며 슬레이트 지붕을 고쳤고, 88올림픽 때 호돌이를 샀고,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IMF가 자식들의 밥그릇을 뺏어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으며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보며 백두산 여행을 꿈꾸기도 했다.

다만 여느 70대 여성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딸만 줄줄이 여덟 명을 낳았다는 것, 두 번 결혼했다는 것 정도다. 또래 여성들의 트레이드마크인 '현모양처' '일부종사'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이.금.아. 나 김봉임(37·방송작가)의 엄마다. 자식과 남편보다는 자기 인생을 더 사랑하는 여자! 나는 엄마를 '까진 할매' 혹은 '자기 자랑쟁이'라고 부른다. 옷 사 입기는 취미, 외출 시 화장은 필수, 인터넷 고스톱과 게이트볼이 특기인 엄마와 마주 앉았다.

   
  엄마 칠순 잔치 때 모습. 가족 구성원이 워낙 많다 보니 다 모이면 정신이 없다.  

#1 딸만 여덟

우리 집은 딸만 8명이다. 올(all)스트라이크, 아들은 없다. 여덟 명 중 7공주로 태어난 나로서는 어중간하게 오빠나 남동생이 한 명 끼어 있다면 골치가 아팠을 거로 생각하지만 줄줄이 딸만 여덟을 낳은 엄마 인생은 고달팠다.

-아들을 낳으려고 7번째인 저까지 낳은 건가요?

"그렇지…. 나는 원래 아들이든 딸이든 2명만 낳고 안 낳으려고 했는데, 네 아부지가 아들 욕심이 많았다 아이가. 옛날, 동네에 앉은뱅이 장애인이 왔었는데, 거동이 불편한 그 사람을 네 아버지가 업어서 배에 태워서 집까지 바래다 준 기라. 근데 그 앉은뱅이가 점쟁이였나 봐. 네 아버지가 고마우니까 사주를 봐줬는데, 아들만 8명인 사주라고 했단다. 네 아버지는 그 말을 믿고 아들 욕심을 키운 거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앉은뱅이는 차마 사주팔자에 딸만 여덟 명이라는 말을 못하고 에둘러서 한 말이었는데…. 나는 아들 욕심보다 돈 욕심이 더 많았다."

-딸 낳고 미역국은 제대로 드셨습니까?

"미역국은 무슨…. 딸 3명 낳은 이후로는 눈치가 보여서 산후 조리도 제대로 못 했다. 여덟 번째 막둥이를 낳았을 때는 집안 분위기가 초상집 같았다. 울고불고하니깐 의사가 도리어 미안해서 돈도 안 받고 도망을 가더라. 하하하."

-아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실 것 같은데?

"제사 때문에 아들, 아들하고 노래 부르는데, 죽고 나서 효도하는 게 무슨 소용 있노? 살아있을 때 잘해야지. 좀 있으면 내 생일인 거 알제? 죽어서 제사 지내라고 안 할 테니까, 살아있을 때 내 생일은 무조건 잘 챙기라."

   
  딸 여덟 명을 품에서 떠나보낸 엄마는 이제 당신만의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2 두 번의 결혼

우리 엄마는 두 번 결혼했다. 첫 번째 결혼은 딸 여덟 명을 같이 낳은 나의 친아버지와, 두 번째 결혼은 아는 친구의 소개로 만난 새 아버지와. 살았던 지명에 따라 친 아버지는 '유구 아버지'로, 새 아버지는 '이동 아버지'라고 부른다.

-유구 아버지와 이동 아버지 중 어느 쪽과 더 궁합이 잘 맞았습니까?

"네 친아버지는 18살에 얼굴도 모르고 시집가서, 죽도록 고생만 하고 살았기 때문에 좋을 때가 별로 없었지. 둘 다 성격이 불같아서 부딪칠 때가 많았다. 두 번째는 오십이 넘어서 결혼했으니까 경제적인 면에서나 심리적으로나 서로 여유가 있었지, 너도 알다시피 이동 아버지가 성격이 좋았다 아이가. 자상하고…."

-결국, 이동 아버지가 더 좋았다는 말씀이시네요. (흠…) 혹시, 재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실 생각은 없었습니까?

"처음에는 재혼을 생각도 안 했지. 근데 너희가 커 가니깐 내가 나이가 들면 짐이 되겠다 싶더라. 자식들이 아무리 많아도 늙어서 등 긁어주는 영감만 하겠나?"

   
  딸 여덟 명을 품에서 떠나보낸 엄마는 이제 당신만의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3 엄마의 꿈

"내가 배웠더라면 박사를 해도 열두 번은 더 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는 우리 엄마. 엄마의 한은 배우지 못한 것에 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소싯적으로 돌아간다면 엄마는 어떤 인생을 꿈꿀까?

-만약에 많이 배우셨다면 지금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 것 같습니까?

"아마도 정치? 내가 전두환 정권 시절 부녀회장을 7년 했는데, 부녀회 사업을 엄청나게 잘했지. 집집이 쌀 반 가마니씩 모은 걸 밑천 삼아서 부녀회 사업을 번창시켰다 아이가. 그 돈으로 몸뻬를 단체로 빼입고 군민 체육대회에 나가면 다른 동네 사람들이 엄청나게 부러워했지."

-엄마는 언제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박정희 정권 시절 국회의원 선거를 하면 한 사람당 돈 2000원과 설탕 한 봉지를 주고 표를 샀어. 근데 우리 동네 책임자가 야당을 찍을 거로 생각해서 나만 쏙 빼놓고 다 돌린 기라. 너무 화가 나서 따지니까 2000원을 주데. 그 돈 받고 다른 사람 찍었지. 그때부터 썩어빠진 정치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나이 여든을 바라보는데, 무슨 꿈이 크게 있겠나? 지금 하고 있는 게이트볼에서 개인 우승하고…. 참, 네가 내 자서전 써주는 게 꿈이다."

   
  딸 여덟 명을 품에서 떠나보낸 엄마는 이제 당신만의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4 유언 '짱'

-딸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든 부모가 그렇듯이 엄마가 없더라도 형제끼리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그것이 제일 하고 싶은 말이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남이 바뀔 것을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바뀔 생각을 하면 모든 게 순탄해진다는 거 잊지 말고…."

-다시 태어난다면?

"남자로 태어나는 건 싫고, 많이 배워서 사회적으로 지위도 높고 잘나가는 멋있는 여자로 한번 살아보고 싶다."

딸 여덟 명을 혼자 키우시느라 고생이 많았던 우리 엄마. 76살의 연세에도 '엄마'보다 '여자'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우리 엄마. 그녀의 당당한 인생에 고마움과 존경을 표한다. 앞으로도 건강하고 더 멋있는 인생을 사시길…. 엄마의 인생 브라보!! <끝>

/김봉임 객원기자

※1년여간 지면에 담은 '가족인터뷰'는 여기까지입니다. 도움 주신 경남건강가정지원센터와 글 보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http://www.idomi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