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시안적 정책 지양 장기적 대책필요


2000년, 문화예산이 정부예산 1%를 돌파했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문화예술계는 적잖이 흥분했다. 말이 1%지 세계적으로도 드문 예기 때문이다. 문민정부 시절 문화예산이 고작 0.6% 정도에 그쳤던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대폭적인’ 증액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0.6% 수준에서 1%로의 증액은 단순한 ‘규모의 증가’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거기에는 ‘구성의 변화’가 전제돼 있는데, 말하자면 새로운 분야, 즉 문화산업 분야가 큰 비중으로 포함돼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문화산업부문을 제외한 기존의 문화예산 항목은 그 규모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제 우선주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지난해 대중문화 중심의 문화산업육성에 대한 정부의 노력은 유별났다. 문화산업을 총괄 지원할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을 발족시키고, 부문산업별 투자조합을 결성해 대규모 펀드를 조성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물론 올해 문화산업부문 예산도 지난해에 비해 28.5%나 늘어난 상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승부처는 문화산업”이라며 “문화콘텐츠 산업에 국운을 걸었다는 생각으로 중점 육성하라”고 지시했을 정도니 문화산업분야에 대한 지원이 앞으로 더욱 확대됐으면 됐지 당장 축소될 것 같지는 않다.
사실 문화산업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를 생각해보면 정부의 이러한 ‘호들갑’도 이해가 된다. 영상산업분야의 경우 지난해 1500억원의 국고가 지원되면서 민간 금융자본도 따라붙기 시작했고, 그런 환경이 조성된 탓인지 지난해 한 경제연구소가 뽑은 10대 히트상품 1위에 오른 영화 〈친구〉는 전국 관객 800만 명을 끌어 모으는 신기록을 수립했고, 작년 한 해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도 거의 50%에 달하는 놀라운 결과를 이뤄냈다. 뿐만 아니라 한 대학생이 재미 삼아 만들었던 플래시애니메이션 ‘엽기토끼 마시마로’는 각종 캐릭터 상품으로 개발되면서 1200억원에 이르는 매출을 기록했고, 애니메이션 〈탑 블레이드〉의 주인공이 갖고 노는 팽이는 지난해 10월 장난감으로 만들어지면서 연말까지 170만 개가 팔려나갔다. 여기에다 문화산업의 특징인 ‘창구효과’(window effect)까지 고려하면, 하나의 성공적인 문화상품이 만들어낼 수 있는 부가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돈 되는’ 문화콘텐츠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돈 안 되는’ 문화인프라가 튼튼해야 한다는 데 있다. 실제로 문화콘텐츠산업의 개별분야는 문화예술적인 창의성을 상당부분 기반으로 삼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하나의 게임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최첨단 디지털 기술 외에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눈길을 끄는 화려한 ‘디자인’이 필요하며, 귀를 즐겁게 하는 ‘음악’과 함께 정신 못 차리게 하는 ‘연출’이 가미돼야 한다. 그래서 유명 게임상품은 한 업체에 의해 개발되기보다는 다양한 전문업체들의 전략적 제휴 속에서 개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기존의 일반예술장르가 문화콘텐츠산업의 기반이 되고, 따라서 일반예술 또한 소외됨없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합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명제는 아직까지 ‘막연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실제 정책으로도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도 이를 의식했음인지 지난 해 12월에 ‘문화콘텐츠산업 발전을 위한 예술과 인문학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지만, 막연한 구호를 재확인하는 수준을 넘지 못했다.
사실 예술적인 창의성은 정책적인 지원이 있다 해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설사 만들어졌다 해도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따라서 문화산업의 튼튼한 발전을 위해서는 업체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와 더불어 장기적인 차원에서 국민 전체의 문화감수성 증진을 위한 종합적인 정책이 수립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http://culture.mus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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