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했다고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를 했습니다. 통상임금은 연장근로수당 등을 계산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만약 정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면 노동자들의 연장근로수당이 늘어나게 됩니다.

특히 한국은 임금 총액 중에서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고 나머지를 연장근로수당 등 각종 수당으로 채우는 '저임금-장시간 노동' 체제가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느냐 아니냐는 매우 큰 관심사였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의 판결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언론 보도와는 사뭇 다릅니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정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법원이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고, 그 뒤에 '퇴직자에게도 일할 지급하지 않고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경우에는 통상임금이 아니다'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예를 들어 두 달에 한 번, 짝수 달 1일에 상여금을 주는 회사가 있다고 합시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 일하는 A씨가 2월 1일 정기 상여금을 받고 근무하다 3월 1일 퇴사를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경우에 비록 다음 정기 상여금 지급일인 4월 1일 이전에 퇴사했지만 2월 1일 ~3월 1일 일한 것을 (일할) 계산해 4월 1일 지급될 상여금의 2분의 1을 퇴사할 때 지급한다면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되지만, 상여금 지급일 이전에 퇴사했으므로 지급하지 않는다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퇴직자에게 정기상여금을 일할 계산해 지급하는 회사가 전체의 몇 퍼센트나 될까요? 아마도 대기업이나 노동조합이 있는 곳을 빼고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특히 노동조합이 거의 없는 중소사업장의 경우 퇴직자에게 정기상여금을 일할 계산해 지급하는 곳은 100개 회사 중 한두 개 회사에 불과할 것입니다.

결국 '정기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대법원 판결의 실제 내용은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다'는 판결에 다름 아닙니다. 실질적으로는 경영계의 손을 들어주었으면서 겉으로는 마치 노동계의 손을 들어준 것처럼 보이게 판결한 대법원, 이것을 '꼼수'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언어의 마술'이라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이런 대법원의 꼼수도, 호들갑 대며 떠들어대는 언론을 속일 수는 있어도 현실로부터 본능적으로 깨달아 알고 있는 평범한 노동자를 속일 수는 없나 봅니다. 페이스북에 쓴 한 여성 노동자 아래와 같은 글이야 말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꿰뚫어 보고 있으니까요.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고 이 사실을 알렸더니 언니들은 딱히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대기업은 돈 많이 줘야 겠네' '성과급은 우짜노' 등등…. 그리고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에 대해서도 얘기 하신다 현장 안에서 그게 얼마나 심한지 아냐고 말도 못한다고. 음 역시나 임금문제에 있어선 언니들이 빠삭하다. 내년도 최저임금 기준으로 월급 계산 후 같이 한숨만 흐…."

/봄밤(깜박 잊어버린 그 이름·http://blog.daum.net/bomnalb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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