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가 갔다. 95년의 짧지 않은 인생이었다지만 그중 27년을 감옥에서 보낸 그였으니 사실 그리 길지도 않은 삶이었다. 온 인류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추도식엔 자그마치 100명에 가까운 전, 현직 정부 수반이 참석했다. 금세기는 물론 지난 세기에도 없던 일이었다.

역시 화해의 상징이었다. 살아서 흑과 백의 악수를 이끌어 냈던 그는 죽어서까지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손잡게 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 평의회 의장의 악수가 그랬다.

온 세상이 그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대부분 찬양과 헌사 일색이었다. 그런 가운데 영국의 중도 좌파를 대변하는 블로그 '레프트 포워드(Leftfoot forward)'(왼발 앞으로란 뜻)에 대단히 흥미로운 글이 하나 올라 왔으니, '아무리 만델라라고 해도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세 가지'란 제목이었다. 칼럼은 만델라의 생전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그의 삶을 기리는 몇 개의 글 뒤에, 그가 '성자에 가까운'(saint-like)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전제로 아주 조심스럽게 세 가지 문제들을 제기했다.

지난 5일 타계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아버지' 넬슨 만델라의 요하네스버그 자택 앞에 만델라 사진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첫 번째는 민영화와 양극화에 관한 것이었다. 만델라의 아프리카 민족회의(ANC)가 주요 기간산업의 국영화를 약속하고도 1994년 집권 후 대대적인 민영화에 돌입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 만델라는 "민영화는 우리 정부의 기본 정책 기조다. 나를 대처주의자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리 불러도 좋다"고 말했었다. 그 누구보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충실한 정부를 운용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조지 소로스가 남아공을 가리켜 국제 자본의 놀이터라고 말할 정도였다.

둘째는 독재자들과 관계였다. 쿠바와 막역한 관계는 충분히 해명이 되는 부분이었다. 과거 그가 남아공 백인 정부와 힘겨운 싸움을 할 때 군대까지 보내 도움을 준 유일한 사람이 카스트로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고 가장 먼저 찾은 나라가 쿠바였다. 하지만 ANC가 가장 많은 후원을 받은 이들이 바로 리비아의 카다피와 인도네시아의 독재자 수하르토였다는 점을 쉽게 수긍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은 현 집권당이기도 한 ANC에 대한 내용이었다. 막대한 영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을 구태 정당이자 개혁 대상으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애초 기대와 달리 그의 후계자 타보 음베키가 이끄는 ANC는 흑인 노동자들의 인권과 자유를 심하게 탄압했다. 오죽했으면 또 다른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투투 주교가 두 번 다시 ANC에 투표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그러니 그가 아무리 위대해도 언급한 몇 가지 문제점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게 해당 칼럼의 요지였다.

틀린 얘기는 하나도 없었다. 그랬다. 만델라도 인간이었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위대한 헌신과 희생이 더욱 빛나는 건 그가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인간인 이상 그 누구도 모든 걸 완벽하게 잘할 수도, 잘 못할 수도 없는 법. 그러니 미워한다고 모든 걸 부정해서도, 좋아한다고 모든 게 완벽했다며 찬양해서도 곤란한 것이다. 그런 식의 맹신과 맹목적 증오가 결국 '반인반신'의 신화로 살아나 혹세무민하는 것이니 남아공 사람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만델라를 '마디바', 즉 '위대한 사람'으로 불렀다. 함바 칼레 마디바!(잘 가요, 위대한 사람!)

/김갑수(한국사회여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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