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에 제일여고 앞에서 명문대학입학축하 명단 펼침막을 보았다. 입시철이면 늘 있는 행사이다. 서울대 누구누구, 연세대, 누구구구, 고려대…. 쭉 이어진다. 끝날 무렵에 경북대와 부산대에 몇명을 보냈다는 것도 들어 있다. 그간 이곳 학생들이 무던히도 고생을 하였겠구나. 참, 좋겠구나.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또 얼마나 좋아하실까 등등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허나 펼침막이 머리 뒤로 사라진 뒤에, 이 사실을 되새김질하면서 그 의미 따위를 따져보게 된다. 이 사실은 단순히 개인이나 학교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좁게는 지역사회, 크게는 한국사회 전체와 관련이 있는 큰 맥락의 문제인 것이다.

몇 해 전에 고인이 되었지만, 중국의 페이샤오퉁(費孝通)은 20세기 전반기 중국사회의 주요 현상을 '사회침식(Sosial Erosion)'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곧 향촌의 인재와 재력이 도시로 빠져나가기만 하고, 다시 향촌에 되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향촌사회가 침식화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결국 농촌의 빈곤, 계급의 모순을 더욱 심화시키면서 중국사회 전체를 혼돈으로 빠지게 하였다는 것이다. 공산혁명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이런 부분에서 찾고 있다.

이를 마산사회에 적용시키면 뭐, 달리 할 말이 없다. 인재는 끊임없이 서울로 빠져 나갔고, 지역의 재부 역시 그들을 따라 서울로 이동하였다. 예전에는 마산고등학교가 그 선두에 섰으나, 평준화 이후 마산지역의 모든 고교에 그 현상이 확산되었다. 아니, 서울이 아니라도 좋은 것이다. 대구나 부산에 있는 학교라도 여하튼 지역 내의 대학이 아니면 되는 것이다. 외지에 나간 이 지역의 인재들은 고향에 거의 돌아오지 않는다.

이제는 사실 더 이상 나갈 인재도 없는 형편이다. 예전에는 그래도 한 학교에 10여명 이상의 인재를 서울대에 보냈으나, 이제 그건 불가능하다. 중앙고등학교는 두 명을 서울대에 보냈다고 플래카드에 올려 놓았으나, 그 정도조차 되지 않는 학교도 있을 것이다. 이건 학생들의 실력이 모자라거나 교사의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밖으로 나갈 인재 자체가 거의 고갈되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외부로의 인재유출 현상이 마산에서 특히 심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지역내 대학을 경시하는 현상은 여하튼 다른 도시에 비해 매우 심한 것으로 보인다. 마산 창원 시내의 고등학교에서는 사실, 경남대나 창원대, 그리고 경상대에도 적지 않은 수의 졸업생을 보내고 있다. 그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라도 플래카드의 마지막 귀퉁이에 이들 학교에 입학하였다는 것 쯤은 올려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좀스런 생각도 해 보았다. 이런 학교에 졸업생들을 보냈다는 사실이 그렇게 부끄러울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인재 유출이 마산사회의 몰락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기는 하다. 자랑스럽게 다닐만한 대학도 없고, 좋은 일자리 역시 부족하며, 재정적 사정 역시 갈수록 열악해 지고 있다.

게다가 삶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조차 악화일로를 걷고 있으며, 이기적인 상공인들은 제 주머니만 챙기고 있다.

대책은? 사실상 없다. 지자체가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오히려 서울에 유학한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짓는데 더 관심이 많다. 모르긴 해도 더 이상 서울로 보낼 인재가 끊기면, 일방적인 인재유출도 없게 될 것이다, 이제 이 도시들은 숨을 거둘 시기만 남았다.

/옥가실(마산에서 띄우는 동아시아 역사 통신·http://blog.naver.com/yufe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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