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댐 짊어지고 산 한번 타볼까나.

“악견산이 슬금슬금 내려 온다/ 웃옷을 어깨 얹고 단추 고름 반쯤 풀고/ 사람 드문 벼랑길로 걸어 내린다/ 악견산 붉은 이마 설핏 가린 해/ 악견산 등줄기로 돋는 땀 냄새/ ……/ 악견산은 어디 죄 저지른 아이처럼 소리없이/ 논둑 따라 나락더미 사이로/ 흘러 안들 가는 냇물 힐금힐금 돌아보며/ 악견산 노란 몸집이 기우뚱 한 번/ 두 번 돌밭을 건너 뛴다.”
자기를 위해 불러 주는 시 한 편이 있을 때 누구든 행복을 느낄 것이다. 비록 산은 행복해하지 못하더라도 산자락에 둘러싸여 사는 이들은 가슴 뿌듯하게 여길 만하겠다. 합천 출신인 박태일 시인은 ‘가을 악견산’을 이렇게 노래했다. 그러면서 “악견산 빈 산 그림자를 밟아가다 후두둑/ 산이 날개 터는 소리에/ 놀라 논을 질러 뛴다”고도 했다.
산악인들은 악견산(491m)이 아주 야트막한 산이라서 가야산 황매산 따위 큰 산들에 가려 나 여기 있소 소리도 못내고 있다가 합천댐이 완공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하지만 1800년대 김정호 선생이 목숨을 걸고 평생을 바쳐 만든 대동여지도에도 나와 있고 임진왜란 때 곽재우와 관련된 전설까지 있는 것을 보면 외지인들에게는 몰라도 적어도 지역 사람들에게만은 꽤나 알려졌고 사랑 받는 산이었다고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왜군이 쳐들어와 악견산에서 곽재우 군을 에워싸고 모든 통로를 끊고 장기전으로 들어갔고, 곽재우는 꾀를 내어 바위를 뚫고 옆에 있는 금성산과 밧줄을 이은 다음 달밤에 귀신처럼 보이는 붉은 허수아비를 띄우자 적군이 놀라 물러갔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어쨌거나 악견산은 박태일 시인이 노래한 가을철이 지난 탓인지 ‘노란 몸집’은 간곳 없고 거뭇거뭇한 바위로 온몸을 두른 채 서 있었다. 잎이 짐에 따라 단풍을 벗어 던지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악견산 오르는 길은 합천댐 조금 못 미쳐 서 있는 표지판에서부터 시작한다. 잘 다듬어진 등산길 초입은 갑갑하리만큼 나무가 우거져 있다. 활엽수도 별로 없고 소나무가 줄이어 서 있는데 발아래에는 누런 솔가리가 수북하다.
15분 가까이 올랐을 즈음에야 비로소 능선에 있는 바위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몸을 돌려 아래를 내려보면 여태까지 등에다 지고 왔던 합천댐이 너부죽이 앉아 있다. 가뭄으로 물이 쫙 빠지고 방류도 하지 않아 오히려 새초롬하고 다소곳한 느낌을 준다. 댐을 지고 예까지 올라온 등허리에선 겨울답지 않게 날씨가 따뜻한데다 바람까지 잠잠해 무럭무럭 땀이 나고. 여기서부터는 등산길 양쪽으로 시야가 트인다. 크고 높은 산처럼 엄청난 규모는 아니지만, 오른쪽에는 바짝 다가앉은 바위부터 깎아지른 듯하고 멀리 금성산의 바위 모습들도 아련하게 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는 산마루로 이어지는 골짜기 따라 쭉쭉 뻗어 있는 바위들이 멋을 부리고 있고 그 틈서리로 소나무를 비롯한 상록수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지만 진행방향은 절대로 모습을 내주지 않는다. 시간 여유가 마땅치 못해 모양이 나타나면 카메라에 예쁘게 담아 바로 돌아서려고 했건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야속하기만 하다.
쇠줄과 철계단을 지나면 나타나는 오른쪽으로 둘러 가는 길, 여기를 지나면 다섯 번째 철계단을 지나게 된다. 여기서 조금더 나아가 나무들과 어울린 바위틈을 지나면 무슨 전망대 같이 튀어나온 바위와 만난다.
여기서 산꼭대기까지는 그리 가파르지 않다. 산마루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자유롭게 흩어져 있다. 여기서 시원한 풍광을 한바탕 느끼고 되돌아 나올 수도 있고 오른쪽에 난 길 따라 내친 김에 금성산(532m)까지 종주할 수도 있다고 한다. 산아래 골짜기 너머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합천댐이 잔잔하다.


△가볼만한 곳

합천 하면 어쨌거나 합천댐을 떠올리게 된다. 82년 공사를 시작해 87년 처음으로 상업 발전을 했고 89년 완공된, 산중바다라는 말을 듣는 커다란 댐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랜 가뭄 끝에 적으나마 이틀 동안 단비가 내리지만 댐은 만수위에서 30m 아래로 빠져 있었다.
빙 둘러 돌아가면 허옇게 드러난 흙더미들이 안타깝다. 하지만 안타깝기는 한첩댐 때문에 고향을 잃어버린 동네 사람들일 것이다. 당시 대병면과 봉산면과 살던 7800여 가구가 담수와 함께 정든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이들이 장소를 옮겨 살고 있는 대병면 이주단지에서는 유람선을 타 볼 수 있다. 10분씩 잘라서 탈 수도 있고 7인승 또는 9인승을 빌려서 두세 식구가 어울려 탈 수도 있다.
합천댐을 둘러 나 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 만나지는 마을마다 무슨무슨 가든이 들어차 있다. 그 유명한 빙어회와 무침.튀김이나 메기 매운탕을 다룬다.
또 길가에 있는 옥계서원과 봉산 새터 관광지에 들를 수도 있고 봉산에서 왼쪽으로 접어들어 합천 해인사에 가 겨울 절간 맛을 볼 수도 있다. 아니면 오른쪽으로 계속 달려 합천읍으로 빠져도 된다.
창원.마산으로 돌아오는 길이라면 창녕군 유어면에 있는 우포늪(소벌) 탐조대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지난 6일 창녕환경운동연합이 한 조사에서 큰부리큰기러기가 4500여 마리 등 철새 7가지가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황조롱이 새매 잿빛개구리매 흰기러기 개리 등이 그것이다.
다만 소리에 민감한 철새들인지라 절대 떠들지 말아야 한다. 합천에서 돌아나오다 40km 조금 덜 된 지점에 이르면 안내표지판이 마중 나와 있다.


△찾아가는 길

악견산은 합천군 대병면 성리에 있다. 합천읍에서 합천댐쪽으로 15km 남짓 가면 나오는 것이다.
창원.마산에서는 남해고속도로 동마산 나들목으로 들어가 곧바로 구마고속도로 대구쪽으로 들어간 다음 30분 가량 달리다 창녕 나들목으로 빠져 나오면 된다. 여기서 국도 24호선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져 40km쯤 떨어진 데에 합천읍이 있다.
진주에서 가려면 의령과 삼가를 지나 합천읍까지 줄곧 내달리는 국도 33호선이 딱 알맞다.
들머리 로터리를 지나 다리를 건너 들어가는 합천읍에서는 왼쪽 합천댐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길이 좋고 표지판이 잘 돼 있어 그대로 달리기만 해도 헤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중교통은 좋지 않은 편이다. 마산에서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버스가 하루 6차례만 오가고 진주에서는 10차례 남짓 버스편이 있다. 합천 시외버스터미널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 40분까지 합천댐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하루 12차례 마련돼 있다. 오전 9시와 9시 30분.10시 30분.11시10분에 있고 오후에는 1230분과 1시 40분.3시.4시 등으로 이어진다. 버스로는 40분 남짓, 택시를 타면 15분이 걸리는 거리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