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포늪에 오시면] (84) 우포늪 제대로 즐기는 법

지금 우포늪에 오시면 겨울철새들이 방문객들을 맞이합니다. 우포늪을 비롯해 한국의 철새도래지에 오는 이들은 겨울 추위에 먹이가 많지 않게 된 머나먼 시베리아 등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를 날고 또 날아와 살아가는 부지런한 이들입니다. 날아오는 도중에 많은 약한 새들은 가차 없이 천적의 먹이가 되어버린다고 합니다. 우포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무사히 도착해 살아가는 이들은 비와 바람 그리고 오는 도중 천적과의 싸움, 그리고 우리 인간이 생각지 못하는 고통을 이겨내고 그 머나먼 항로에서 무사히 내려앉은 작은 영웅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이곳까지 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을 생각하자니 가슴이 찡해집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사히 온 우포늪이 항상 천국은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먹이 경쟁, 천적과의 숨바꼭질 속에서도 그들은 열심히 살아갑니다.

겨울에 찾아 온 천사들인 그들의 먹이활동 노력을 보노라면 더욱 부지런해져야지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연신 머리와 부리를 흔들며 노력하는 노랑부리저어새를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비해 우포의 터줏대감으로 한곳에 머물며 먹이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순간에 먹이를 콕 찍어 내리는 왜가리를 보면 다양하게 살아가는 생태계의 종들과 우리 인간들의 삶을 비교도 해보고 다양성을 느낍니다.

얼마 전 우포늪을 찾은 서울의 조용철 기자는 자연과 우포를 아주 좋아하는데, 그분은 '우포늪은 수많은 생명을 보듬은 별천지다'라며, '흔하거나 귀하거나, 작거나 크거나 그 생명을 차별하지 않고 품어준다'고 합니다. 다양한 삶들이 있는 이곳 우포에서 사는 우리 인간들도 철새들처럼 열심히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우포늪 위로 겨울 철새들이 날아들고 있다.

◇산토끼 노래동산

우포늪 부근에 새로운 명물이 하나 생겼습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불러온 노래인 '산토끼노래'가 만들어진 창녕군 이방면 이방초등학교 뒤에 조성된 '산토끼노래동산'이 오랜 준비 끝에 드디어 문을 열었습니다. 그곳에 가시면 다양한 국내외 토끼들과 '산토끼노래'를 만든 이일래 선생의 연대기는 물론 특히 70미터라는 긴 미끄럼틀을 만납니다.

어린이들은 작은 미끄럼틀에도 잘 놀고 만족하는데 그렇게 긴 특이한 미끄럼틀을 타니 아주 재미있어하고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창녕군 문화관광해설사들에 따르면 유치원 어린이들과 가족 방문객들이 많이 오는데, 다양한 토끼들을 보고 먹이도 주고 하니 어린이들은 몰두하여 집에 가는 것을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제가 살았던 집 부근에 시설이 매우 좋았던 학교에는 수십 미터나 되던 미끄럼틀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독특한 체험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도 그 학교를 생각하거나 가게 되면 그 길고 긴 미끄럼틀이 생각납니다. 아직도 저를 기다릴 것만 같습니다. 어릴 때 타던 미끄럼틀을 40년이 지나도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이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이죠.

우포늪 인근 산토끼노래동산에서의 미끄럼틀체험이 아주 작지만 아이들에게는 영원히 잊히지 않는 체험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날씨는 춥지만 산토끼노래동산에서의 즐겁고 새로운 추억이 먼 훗날 언제나 이야기해도 김이 무럭무럭 나는 따뜻한 추억거리를 만들어 줄 것만 같습니다. 노래동산에서 차로 몇 분만 가면 만나는 '이방장터'에도 들러 음식도 드시고 눈요기도 하시면 더욱 알찬 여행이 될 것입니다.

우포늪 인근 또 다른 볼거리는 4억~5억 년 전의 화석과 곤충들을 만나는 엘라화석곤충박물관입니다. 1층과 2층 합하여 60평 규모로 우포늪생태관 300미터 앞 창녕 유어 세진리에 있습니다. 박물관 1층에는 화석을, 2층에는 각종 곤충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엘라화석곤충박물관은 작년 5월 문을 열었는데,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캐나다 등에서 들여온 귀한 지구 생태계의 선배들이 살았던 수많은 귀중한 흔적을 만나볼 수 있는 곳으로 화석 600점과 곤충3000점이 전시되어 있고, 수장고엔 5000점의 화석들과 3000점의 곤충들이 있습니다.

서울 인사동에서 칼 박물관을 운영하는 어느 분은 어릴 때부터 관심이 있어 외국 출장 중에 모은 칼 2000점으로 박물관을 열었습니다. 그 분은 '이를수록 좋다'며 '남들이 안하는 특정한 것을 모으고 야외에 200평 정도 땅을 사 교육과 전시를 동시에 하면 보람된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삼청동엔 30평 정도의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부엉이박물관이 있는데 부엉이 공예품 수천 점이 있습니다. 몇 센티미터의 작은 것에서 다양한 크기이니 수천 점을 모아도 30평으로 충분하답니다.

우포늪 주위에도 특이한 박물관들이 많다면 독특한 볼거리와 체험을 줄 수 있을 것이고, 운영하는 사람도 만족하리라 생각됩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모으면 그들을 공유하면서 즐겁고 보람되게 사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남이섬과 국회에서도 공연한 우포늪 생태춤을 주제로 작지만 독특한(unique) 생태춤 박물관을 만들고자 하니 즐겁습니다.

지금 우포늪에 오시면 철새와 더불어 또 다른 주인공인 나무가 있습니다. 봄의 연두색은 어린아이가 성장하는 것 같고, 여름의 녹색으로 옷을 바꿔 입으면 청년을 보는 듯하고, 가을에 낙엽을 보노라면 중장년의 어른 같습니다. 겨울이 되어 이렇게 나뭇잎 보기도 힘들어지는 나무들에게서 자신의 것을 버림으로써 방문객들이 철새를 잘 보게 해주는 배려를 느낍니다. 한 해가 다 가니 비우고 또 비워 청결해지는 마음을 나무로부터 배우고자 합니다.

◇보지 않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며칠 전 우포늪 해설사 한 명이 읽고 있던 박웅현 광고전문가가 지은 <책은 도끼다>라는 책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시각장애인인 미국의 헬렌 켈러가 생각납니다. 그는 "내가 대학 총장이라면 '눈 사용법'을 필수과목으로 만들겠다"고 했답니다. 시각장애인인 자신보다 잘 볼 수 있는 일반인들이 더 못 본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영미 에세이 50선에 드는 책 <삼일만 볼 수 있다면>에서, 저자인 헬렌 켈러는 숲을 다녀온 사람에게 "무엇을 보았습니까?" 물어봅니다. 그런데 대답은 "별 것 없어요(Nothing special)"였답니다. 자기가 숲에서 느낀 바람과 나뭇잎과 자작나무와 떡갈나무 몸통을 만졌을 때의 전혀 다른 느낌과, 졸졸졸 지나가는 물소리를 왜 못보고 못 들었느냐고 그는 말합니다.

우포늪에 오신 여러분은 무엇을 보셨습니까? 연간 수십만 명이 왔다갑니다만 그 분들은 무엇을 봤을까요? 볼 것 없다 하면서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연민을 느낍니다. 많은 분들이 해설사들에게 해설을 요청하시고 눈을 크게 떠서 많이 보시고 느끼시면 좋겠습니다. 수동적인 보기가 아닌 적극적인 보기(active watching)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노용호(창녕군 우포늪관리사업소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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