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1인 밴드 '바나나코'의 김바나나 씨

빨랫줄에는 목이 늘어진 한 켤레의 양말이 있었을 것이고, 청년은 햇살이 드는 자리를 따라 몸의 방향을 틀어가며 늦가을 한낮을 무미건조하게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단지 유리창 너머 허공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하필 그때 바람이 불었고, 양말짝이 펄럭였을 것이고, 바람이 지나간 뒤에도 양말은 좀 더 길게 뒤척거렸을 것이다. 청년은 늘 그랬듯이 기타 울림통 속 영혼을 슬쩍 끄집어내고는 '어이, 안녕하냐' 툭툭 두드려 보고 다시 밀어 넣었는지도….

진주에 터를 잡고 음악 활동을 하는 록밴드 '바나나코' 김바나나(본명 김성림·35) 씨의 이야기다. 그는 자작곡 '가볍게'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양말은 활공하는 새의 모습으로 날고', 삶이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갈 수 있'음을 노래한다.

'바나나코'는 김바나나 씨의 1인 밴드다. 키보드와 코러스를 맡은 강준영 씨가 객원으로 참여할 뿐, 작사·작곡, 기타와 노래, 녹음작업 때의 믹싱, 마스터링까지 김바나나 씨가 다 맡아 한다.

김바나나 씨, 조금 남다르다.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매우 성실해서 혼자 하는 음악 작업을 회사원들 출근하듯이 짜임새 있게 하고, 홀로 남은 어머니를 애인처럼, 친구처럼 챙기는 이"라고 한다. 또 "자기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지역에서 자기 색깔을 제대로 보여주는 뮤지션"이라고 말한다. 어떻든, 이들은 김바나나 씨가 지금까지 주위에서 봐왔던, 밤을 낮으로 무질서한 생활을 이어가는 예술인들과는 확실히 다름을 강조했다.

진주에 터를 잡고 음악 활동을 하는 록밴드 '바나나코' 김바나나 씨./김기종 작가

김바나나 씨. 그는 중학시절 사촌 형의 기타 연주에 처음 흥미를 갖게 됐고, 엉망으로 부서진 기타에 못을 박아서는 혼자서 뚱땅거리며 그 소리를 즐기게 됐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병역의무를 마치고 서울에 가서야 비로소 음악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

"컴퓨터로 음악하는 것을 공부하게 되고 음악 활동하는 사람을 많이 알게 되었지요. 근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임종도 지키지 못했는데…. 2년 만에 진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가 혼자 있어서."

26살이었다. 김바나나 씨는 물론 그후 진주 생활을 벗어나려고 틈틈이 기회를 엿보기도 했다. 음악 활동을 하려면 진주보다는 역시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 기획사와 손잡고 제대로 된 음악환경에서 곡을 만들고 공연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울컥울컥 치솟아 올랐다. 그건 지금도 가끔 불쑥불쑥 치고 들어오는 생각이기도 하다고.

김바나나 씨는 예술 활동을 하고자 한다면, 음악을 하고자 한다면, 돈을 벌 수 있는 일과 자기 정체성을 내줄 수 있는 일 두 가지를 다 하라고 말한다.

"현실에서 창작자는 돈 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지요. 솔직히 예술 한답시고 배고픈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잖아요. 지 밥벌이는 지가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빌붙지 않고 활동하는 방법이지요. 그리고 사람으로서 사지 멀쩡하면 어디 가서 밥 벌어먹는 일은 해야지요."

밥벌이는 하니 안하니 선택이 아니라 삶의 기본이고, 음악을 하되 수입이 되는 밥벌이를 한다면 더욱 안정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밥벌이로서 목수 일을 익혔다. 20대 후반 2년 정도 작곡 작업에 매달리던 그는 29살에 흙집 짓기에 심취했었다. 처음에는 배우러 갔고, 얼마 후부터는 밥벌이로서의 일감이 됐다. 지금도 '돈 떨어지면 언제든 일하러 오라'는 동료 목수가 있다.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게 어렵더군요. 한 번 집을 지으러 가면 몇 달씩 있어야 하니까 기타와 노트북을 들고 가서 작곡 작업을 계속했지만 길게 굵직한 작업은 될 수 없더라고요. 아, 밥벌이를 잘못 선택했구나 생각한 때도 있었지요."

흙집짓기 2년 반, 집짓는 일하다가 만난 목수대장과 또 한 2년 반 그렇게 5년 동안 김바나나 씨는 밥벌이로서의 노동과 음악작업을 병행해왔다. 그러다가 지난 해 초부터는 한 번 시작하면 몇 달이 걸리는 집짓기에는 나가지 않고 언제든 자유로이 나갈 수 있는 일용 잡부 일을 하고 있다.

"1년 중 6개월은 밥벌이하고 6개월은 마음껏 작업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저야 음악만 하고 먹고 살면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하하."

밴드 '바나나코'는 얼마 전 2집 앨범을 내고 현재 한창 공연활동을 하는 중이다. 김바나나 씨는 '판을 벌여주는 곳만 있으면' 마음 맞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준비하고 공연한다. 진주에서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알려진 부에나비스타, 다원 등에서 이미 2번의 공연을 끝냈고, 서울에서 한 차례 공연을 끝냈다. 내년 1~2월 중에는 창원의 재즈클럽 '몽크'에서 공연할 예정이라니, 경남 동부지역에서도 곧 밴드 '바나나코'의 음악을 만날 수 있다.

'일어나 자기 전까지 하고 싶은 것만 열심히 일한다'는 김바나나 씨가 펼쳐놓는 음악이 어떤 색깔일지는, 당신이 접하고 느끼는 그대로일 것이다. 앨범 구매는 온라인에서는 향뮤직에서, 오프라인에서는 부에나비스타, 다원 등 공연현장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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