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옷 수선하는 정수현 씨

이른 점심시간. 한 손님이 들어온다.

"사장님. 옷이 너무 커서 좀 줄이려고요."

"안 큰데? 딱 보기 좋은데 왜요."

"아니에요. 옷이 이만큼이나 크잖아요."

"겨울에 안에 두꺼운 옷 입으면 딱 맞겠네."

"봄에도 입어야지. 그냥 좀 해주이소."

주인은 마지못해 시침질을 시작한다.

"깃도 너무 큰데. 이것은 어떻게 안 되나요."

"뭘 괜찮은데 자꾸 고친다고 해요. 내가 알아서 고쳐줄게."

'미화 옷 수선'(창원 성산구 중앙동)에서 손님과 이 정도 실랑이는 흔한 일이다. 바로 정수현(65) 사장의 고집 때문이다. 40년간 의류계통에 몸담은 그에게는 '수선 철학'이 있었다. 바로 '고객 마음에도 들어야겠지만 내 마음에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철학을 갖게 된 데는 그가 옷을 직접 만들었던 경험이 한몫했다.

20대 때 우연히 시작하게 된 일. 그것이 적성인 줄 한 번에 알아봤다. 한 달에 50원. 당시 이발 값 정도 되는 월급을 받고도 의상실을 차릴 생각에 양복, 숙녀복 등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배웠다. 정 사장은 "내가 일을 배울 때만 해도 정말 잘 나갔어요. 일자리도 많고 일감도 많았죠"라며 회상했다. 1년 정도 욕심내서 일을 하니 남들보다 빨리 늘었다. 그렇게 배운 기술로 마산 창동 부림시장에서 크진 않지만 의상실도 열었다.

하지만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화려했던 맞춤 의류시장이 88올림픽 이후에 점점 쇠락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옷 유행주기가 짧아진 탓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맞춤옷보다는 편리하게 살 수 있는 기성복이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의상실이 설 자리도 좁아졌다. 일감이 줄어들자 그와 함께 일하던 동료 중 일부는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떠나고 일부는 전혀 다른 업종으로 옮겼다. 정 사장도 결국 의상실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고객 마음에도 들어야겠지만 내 마음에도 들어야 한다'는 수선 철학으로 40년 한 길을 걸어 온 정수현 씨.

그는 "일본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선진국에 가면 이런 기술 배운 사람들이 대우받거든요. 그러면 그 일을 대대로 물려주잖아요.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기술자들이 대우를 잘 못 받아요.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 서울에 있는 맞춤 양복가게가 곧 문을 닫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도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라며 "이렇게 옷 만드는 사람들 다 죽고 나면 맞춤옷은 외국 가서 사 입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몰라요. 젊은 사람들이 안배우려고 하니까"라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는 의상실을 접고 다른 일을 하다가 90년대 옷 수선가게를 차렸다. 당시에는 경기가 괜찮은 편이라 벌이도 쏠쏠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자녀 대학교육까지 시켰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산다는 말이 있듯이 IMF외환위기가 터진 뒤에도 3년 정도는 괜찮았다. 하지만 혼자서 시장 7~8개 역할을 하는 대형 쇼핑몰을 당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0년대 초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2~3년 만에 상권이 확 시들게 됐다.

정 사장은 "돈이라는 것도 혈액이랑 같아서 돌고 돌아야 하는데 동네 시장이 죽고 동네 가게가 죽고. 서민들 다 이렇게 만들어 놨으니, 나중에는 누가 백화점 가서 물건 삽니까. 서민이 살아야 중산층도 살고, 중산층이 살아야 대기업도 사는 건데. 저는 그래서 요즘도 백화점 안 갑니다. 피해자니까요"라며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연말이면 특히 활기찼던 창동 부림 시장과 중앙동 오거리를 추억하는 그의 눈에는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동시에 담겨있었다. 가장 화려했던 시절 꽃다운 나이에 눈부신 의류계통에 몸을 담아 40년간 그 흥망성쇠를 지켜본 산증인. 이제는 손자 보는 재미로 사는 할아버지로 부인과 함께 여행 다니고 싶은 남편으로 자식들이 찾아올 수 있는 보금자리로 그렇게 평범한 삶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옷에 달린 벨트 고리를 수선하는 세심한 손길.

정 사장은 "큰 것 바라는 것 없습니다. 그냥 우리 부부 몸 건강히 좋아하는 낚시도 다니고 등산도 하면서 살고 싶죠. 혹시 경기가 다시 좋아져서 수입도 는다면 어려운 사람 돕고 싶기도 하고요. 그게 답니다"라고 말한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단을 줄이도록 맡긴 코트 수선이 끝났다. 하지만 단을 줄이고 슬쩍 미소를 보이더니 곧 표정이 좋지 않다. 허리끈을 지탱하는 고리가 허술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만들면 안 되지. 왜 이렇게 해놨는지 알아요? 귀찮아서 그래. 그런데 이러면 오래 못 입어요"라고 말하고는 남은 천으로 고리를 만들어 고쳐달았다. 그제야 정수현 사장이 만족스럽게 웃는다.

수선한 옷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해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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