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인과 톡톡]정광석 삼진조선 중국 위해조선소 사장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최영미 시 '선운사에서' 부분). 한국의 조선산업은 이랬다.

현재 한국의 조선산업은 동굴 속을 헤매다 이제 서서히 터널 속을 빠져나와 출구를 찾은 형국이다. 현금 유동성 위기로 말미암은 STX 그룹 해체는 한국 조선산업 위기의 단면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경기지표상 내후년부터 조선산업은 또다시 피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광석(60) 삼진조선 중국 위해조선소 사장이 지난 5일 창원대학교를 찾아 공대생들에게 현재 조선산업 현황을 인문 지식으로 풀어내 눈길을 끌었다. 정 사장은 지난 2002년 STX조선해양에 들어가 2008년까지 STX조선해양 부사장·사장, 2008~2010년 STX다롄조선기지 총괄 사장을 역임했다. 정 사장으로부터 중국에서 본 한국의 조선산업 전망을 들어봤다.

지난 5일 창원대 초청 특강 전 만난 정광석(왼쪽) 삼진조선 중국 위해조선소 사장. /박일호 기자

◇삼진조선 중국 위해조선소 사장 맡은 지 1년 = 정광석 사장은 2010년 7월 STX다롄조선기지 총괄 사장을 그만두고 한 달 뒤인 8월 성동조선해양 생산총괄본부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는 1년 만에 성동조선해양을 떠났고 2012년 1년 동안은 조금 쉬었다. 쉬는 동안 경남과 호남 쪽 조선 관련 중소기업들에 기술 자문을 해주었다. 그러다가 삼진조선 창업자인 강영일 회장과 오랜 인연으로 삼진조선 중국 위해조선소로 가게 됐다.

삼진조선은 중국 산동성 위해시에 조선소가 있다. 서울사무소에서는 영업, 부산사무소에서는 설계를 맡고 있다. 삼진조선은 처음엔 조선에 관련된 대형 블록들을 만드는 회사로 시작했고, 조선 경기가 좋아지면서 조선업에 뛰어들었다. 삼진조선은 처음부터 어려운 배를 만들었다. 자동차 운반선으로 시작했다. 요즘엔 컨테이너선과 벌크선을 주로 만들고 앞으로는 케미컬 탱커를 지을 계획이다.

정 사장은 "요즘 중국에서 외국투자기업이 선박 전체를 만들려고 하면 허가를 잘 안 내준다"면서 "STX다롄조선, 삼진조선이 허가가 나 있고, 한 군데 더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STX다롄조선 탄생 뒷얘기 = 정 사장은 2008~2010년 STX다롄조선기지 총괄 사장을 했다. STX다롄조선이 생겨난 배경과 현재 다롄조선 사태의 문제점을 조금은 알고 있지 않을까.

"상당히 센시티브한(민감한) 건데. 그 당시 (마산)수정만도 있었고, 만일 수정만에 (STX 공장이) 들어갈 수 있었으면…자금이란 게 한계가 있으니까 수정만에 자금 투자하고 다른 데(중국 다롄) 갈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정 사장은 진해조선소를 추가 매립하는 데도 시간이 엄청 많이 걸렸다고 회고했다. 환경문제도 있었지만 바다 매립 허가 나는 게 힘들어서 몇 년씩 걸렸다고 토로했다. 그런데 2008년 당시 중국 정부에서는 바다 매립부터 모든 것을 다 해줬다고 한다. STX는 갈 데가 거기(다롄)밖에 없었단다.

STX에게 모든 것을 다 해준 중국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중국은 당시 조선산업에 한계가 있었다. 한국의 좋은 기술이 들어오면 조선 기술을 일부러 빼지 않더라도 옆에 있으면 배울 수 있는 무형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중국에 대형 공장이 들어서면 다롄 시민 고용 효과도 있고 경제적 효과가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이해득실 따져 당연히 유치하고 싶어 했다. 다른 외자기업도 많이 유치했다."

다롄시에서는 당시 정책적으로 조선 쪽 말고도 기름 쪽 외자기업을 많이 유치했었다. 싱가포르에선 부동산 투자를 많이 하기도 했다.

5년 전만 해도 승승장구하던 STX다롄조선은 현재 생사 기로에 놓였다. 매각하려 해도 살 기업이 없다. 왜 이런 지경까지 왔을까.

예상했던 대로 정 사장은 "세계 조선시장이 죽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은 STX다롄조선이 잘 되면 얻는 게 많았을 테니까 처음엔 마구 지원해줬다. 하지만 중국은 마켓이 줄어들면 자금을 퍼부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중국 은행이 STX다롄조선에 시설금융 또는 제작금융을 퍼붓다가 세계 시장 죽어가니까 정부 지원을 멈춘 이유다. 중국 자체 국영조선소 일감도 줄어드니까 조선시장을 단기적으로 비관적으로 본 것 같다고 정 사장은 설명했다.

◇STX다롄조선을 그만둔 까닭 = 정 사장은 2010년 성동조선해양에서 기술 부문을 키우는데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들어와서 STX다롄조선을 그만두게 됐다. "사람이 그렇잖은가.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딴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만둘 때 강덕수 회장에게 욕 많이 먹었다. 한창 (조선경기가) 좋을 때 나오니까 더 욕 많이 먹었다."

지금 STX조선해양, STX중공업, STX엔진 등 조선 관련 STX 계열사들은 모두 자율협약을 체결한 상태다. STX 재기 가능성에 대한 정 사장 견해는 어떨까.

정 사장은 "STX는 자율협약을 체결했지만 충분히 저력 있는 회사라고 생각한다. 시장만 따라주면 빠른 시간 내에 정상화되고 재기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이 짧은 기간 동안 많이 빠져나간 것을 안타까워했다. 정 사장은 "STX가 힘든 기간 동안 엔지니어들이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 잘나가던 회사가 이렇게 되다니 하는 생각도 들 테고. STX로서는 한 사람 한 사람 설득하면 몰라도 조선 엔지니어를 놓친 게 가장 힘든 부분일 것"이라고 걱정했다.

공격 경영, 금융 달인, M&A 귀재 등 수식어가 붙는 강덕수 회장의 경영 스타일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정 회장은 강 회장을 금융·재무 쪽에 상당히 밝은 전문인이라고 평가했다. 또 "금융 쪽으로 많은 좋은 방법을 취해서 회사를 잘 키워나갔다. STX가 크는 데 엄청난 밑거름이 됐다"고 밝혔다.

강 회장이 과도한 투자를 한 것이 현재 STX 사태를 맞게 된 원인 아니냐는 질문에는 일반 경영론으로 대처했다. "결과가 나쁘니까 과도한 투자였고 결과 좋았다면 과감한 투자였다고 했을 것이다. 보통 100이라는 능력 가진 기업이 다른 데 20 정도 투자하고, 실패해도 본체 흔들리지 않게 하면 안정적인 투자라고 한다. 100이란 능력 있는 기업이 50이상 투자하면 본체가 죽지 않나. 결과가 나쁘면 소극적인 투자라고 했을 테고. 과감하게 투자했다 안 되면 과도한 투자라고 하는데, 그건 운이라고 본다. 모든 기업이 과도한 투자를 해서 성공해왔지 않나. 또 실제 경영에선 과감하게 투자하라고 하지 않나."

◇중국에서 본 한국 조선 산업 전망 = 2013년 12월 현재 중국 정부와 중국 언론들 보도를 보면 한국 조선산업을 상당히 장밋빛처럼 낙관적으로 본다는 게 정 사장의 분석이다. 중국 정부는 한국 조선산업을 중국 조선산업의 선행 지표로 본다. 한국이 좋아진다 하면 곧 중국도 좋아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정 사장은 현재 중국은 고부가가치 선박기술까지는 한국을 못 따라오거나 조금 처진다고 진단했다. LNG선 등 선박 기술은 아직 약하다. 사람을 많이 투입하는 것, 누구든지 알고 있는 조선 기술은 중국 자체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최근 중국은 친환경선박 기술도 자체적으로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잘 알려졌듯이 앞으로 조선시장에서는 친환경 선박이 뜰 것이다. 정 사장은 "중국이 저력 있고 기초 기술 실력이 상당히 다져졌기 때문에 한국도 긴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국에서 바라보는 2014년 한국의 조선 경기는 희망적이라고 정 사장은 밝혔다. 조선은 두 가지로 봐야 한다. 하나는 영업환경, 또하나는 생산환경이다. 영업환경은 지금부터 좋아지고 있다. 생산환경은 원가가 들어가고 영업이익을 남기느냐 아니냐를 따져야 하므로 아직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없다. 지난 201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영업환경이 상당히 어려웠을 때 수주했던 것은 영업이익률이 낮다거나 적자수주 했을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영업하는 것은 영업환경이 지금부터 좋아지고 있어서 내후년 되면 실제 생산환경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정 사장은 내다봤다.

◇중국 진출하려는 국내 기업들이 유념해야 할 점 = 최근에는 조선 경기가 침체해 있어 중국에 진출하는 국내 조선 업체도 없고, 중국 역시 외자기업들에 허가를 안 내준다. 중국 시장 진출할 때 인건비가 싸다는 것을 장점으로 생각해 사업을 벌이는 것은 금물이다. 중국에서 싼 인건비로 배를 만들어 유럽에 수출하겠다는 생각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정 사장은 "중국 내수시장이 엄청나게 크다. 내수시장 메리트 이용하는 건 좋은데, 인건비 오르는 속도가 내년 다르고 내후년 다르다. 지금 계산한 게 내년, 후년도 똑같다고 보는 건 착오"라고 충고했다. 또 "중국 시장 현황을 알려면 무역협회에서 중국에 사무실 많이 갖고 있으니까 무협 활용하거나 중국에 진출해 부속품 기자재, 식품 등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한테 조언 받는 게 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했다.

정 사장에게 마지막으로 삼진조선 중국 위해조선소의 내년 계획을 물었다. "앞으로 삼진조선 위해조선소 방향은 선박 특화다. 제일 특화하려는 방향이 화학제품 운반선, 케미컬 탱커나 PC선 공략이다. 한국서 만든 컨테이너선보다는 작지만 대형 컨테이너선도 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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