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을 '독재'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넘친다. 정치적 선동 구호를 넘어 "박정희 유신체제를 닮아가고 있다"는 진보 학계의 나름 면밀한 진단까지 나온 상황이다. 지난 대선의 불법성 시비는 물론이고,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청구와 전교조 법외노조화 등이 그 주요 근거로 제시된다.

하지만 누구도 쉽게 부인하지 못하는 이면의 '진실' 또한 있다. 그럼 현 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닌가라는 고민이 그것이다. 민주정권의 공안통치, 전체주의적 민주주의 등 다소 기묘한 체제 분석론이 쏟아지는 이유다. 독재의 징표라는 몇몇 사례도 그렇다. 분명 폭압적 성격이 있긴 하나 법·제도적 내용과 절차까지 무시되고 있는 건 아니다. 또 어쨌든 "여야가 합의하면 따르겠다"며 적어도 외양으로는 의회정치를 존중하고 있는 박 대통령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최근 <경향신문> 칼럼(11월 30일 자)에서 이 혼란의 근원을 파헤친다. "독재는 어디까지나 최종 목표(경제 발전, 자유민주주의 등)를 달성하기 위한 예외적 수단"이며 "민주적 헌법의 기초 위에서 가능한 것"이라는 역설. 민주적 헌법은 그에 반하는 모든 것을 독재로 규정하는 사실상 또 다른 독재의 논리다. 이 교수 말처럼 "박근혜 정부는 과거로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나아갈 곳이 없는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징후"가 맞다면 결국 우리가 사유해야 하는 것은 독재가 아니다. 문제는 다시 민주주의다.

정당 해산 위기에 몰린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지난달 28일 '유신독재 반대 민주 수호! 투쟁본부' 중앙회의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의 '독재' 논란은 어쩌면 특정 세력과 계층의 필요에 의해 특정한 측면만 강렬하게 부각된 민주적 통치 체제의 한계의 일면일 뿐이다. 민주주의 수호를 명분으로, 또는 민주화란 이름으로 배제되고 있는 수많은 기본 권리들, 민주주의들. 김윤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이 주목하는 건 소득과 정치의 근본적 반민주성이다. 박근혜 정권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킨다며 정치사상의 자유와 노동권을 압박하고 민주당 등 야권은 또 그들대로 민주주의를 회복한다며 시민들 삶에 중요한 '진짜 갈등'을 숨긴다. 김 소장은 "정치가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불평등으로 득을 보는 이들이 주도하는 사회가 그것을 묵인하고 있는 것"이라며 정치·사회적 불평등이야말로 '진짜 독재'의 뿌리라고 주장한다.

독재가 횡행하는 현장은 오히려 시민들의 구체적인 삶이다. 자유무역협정, 공기업 민영화, 농축산물시장 개방 등 우리 삶을 통째로 뒤흔들 각종 경제·무역 정책이 피해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한 채 추진되고, 시장을 독점한 재벌 대기업의 횡포는 끊임없이 노동자·서민의 '을의 눈물'을 강요한다. 국민 여론은 일부 거대 보수·서울 언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으며, 여야 지배정당에만 유리한 정치관계법은 시민들의 활발한 정치 참여를 원천적으로 가로막는다. 이 모든 '독재'의 폐해는 박 정권의 그것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과연 누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박근혜 퇴진을 열망하는 사람들은 왜 숱한 폭로와 공격에도 국민의 70%가 퇴진에 반대하는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이는 결국 자신의 민주적·인간적 권리와 요구는 그 '열망' 안에 담겨 있지 않다는 무언의 항의이며 박근혜식 독재도 불안하지만 당신들의 민주주의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냉소적 응답이다. 응답해야 하는 것은 1987년이 아니다. 2013년 오늘, 바로 지금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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